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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장의 품격 "돈보다 선원 살렸으니 만족"

입력 : 2015-07-17 19:24:55 수정 : 2015-07-18 11: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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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산 배 버리고 선원부터 살린 '선장의 결단'…산선적 ‘금강호’ 정도영 선장…파도로 배 기울자 즉시 퇴선조치…선원 6명 등 모두 탈출 구조돼
“퇴선하라, 퇴선하라!”

지난 15일 오후 11시20분쯤 부산 남형제섬 서남쪽 20㎞ 해상. 북상 중인 제11호 태풍 낭카의 영향으로 4m가 넘는 집채만 한 파도가 일어 부산항으로 피항 중이던 부산선적 외끌이 저인망어선 금강호(65t)가 왼쪽으로 기울었다. 갑판장이 갑판 아래 선실로 내려가 자고 있던 선원들을 향해 고함을 쳤다.

금강호는 13일 부산남항에서 출항해 거문도 동남쪽 백도 인근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태풍이 올라오자 급히 부산항으로 귀항하던 중 사고해역에서 돌풍과 함께 큰 파도를 만나 한쪽으로 휩쓸렸다.

조타실에 있던 배의 선주이자 선장인 정도영(61·사진)씨는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불가항력이었다. 큰 파도가 다시 한 번 뱃전을 때렸다. 배는 왼쪽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17일 금강호 정도영(오른쪽) 선장과 금강호 선원 9명을 구조한 윤창호 이재호 선장이 긴박했던 당시의 구조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 선장은 이날 몸에 이상증세를 느껴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정도영 선장 제공
정 선장은 전 재산인 18억원짜리 배를 지킬 것인지, 선원을 살릴 것인지를 순간적으로 고민하던 끝에 배를 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는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만 사람의 생명은 잘못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주저하지 않았다. 배에는 이틀간 조업한 고급어종인 능골대 50여상자(시가 1100만원)가 실려 있었다. 배 등을 포기한 그는 가장 먼저 김길한(59) 갑판장을 불러 선실에서 자고 있던 선원(6명)들을 빨리 깨우도록 했다. 이어 선박 좌현에 있는 구명벌(구명보트) 2개를 터뜨렸다. 하지만 배가 좌현으로 기우는 바람에 탈 수가 없었다. 정 선장은 추가 비상용으로 준비해둔 대형 부의(일종의 스치로폼) 2개를 묶은 뒤 선원들이 잡을 수 있는 줄을 매달고 탈출을 명했다.

또 VHF(초단파) 무전기를 거듭 두드렸다. 앞서 부산항으로 피항하던 같은 선단 소속 윤창호(65t·선장 이재호)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으로 기울어져 가는 배에서 벗어났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인도네시아 선원 4명을 포함한 기관장 등 8명의 이름을 불렀다. 한데 갑판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선원들은 높이 4m 파도와 강풍, 어둠 속에서 사투를 벌였다. 10분 뒤 배는 완전히 물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20분 쯤 뒤에 구조선 윤창호의 서치라이트가 비쳤다.

‘갑판장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 선원들은 주변을 수색하다 100여m 떨어진 곳에서 그물뭉치를 붙잡고 표류하던 갑판장을 발견했다. 선원들을 모두 구조한 윤창호는 16일 오전 2시45분쯤 부산남항에 무사히 입항했다.

윤창호(금강호 선원 구조 어선)
정 선장은 “큰 파도를 맞은 뒤 좌우로 흔들리던 배가 왼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순간 배를 살리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즉각 퇴선조치를 이행했다”며 “물속에서 갑판장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땐 가슴이 아팠는데 뒤늦게라도 구조돼 매우 감사하다”고 사고 당시를 떠올렸다.

부산해양경비안전서 관계자는 “태풍 속에서 침몰했는데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며 “선장이 전 재산인 배를 즉각 포기하는 결단이 결국 모든 선원을 살린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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