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고 있는 ‘세밀가귀’ 전시회의 고려 나전경함 5점의 전시 모습과 영국박물관 소장의 나전경함. 전 세계를 통틀어 9점만 전하는 나전경함을 리움은 미국, 영국, 일본 등의 소장처에서 빌려와 한자리에 모았다. 리움 제공 |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5점의 나전경함을 모아 특별전 ‘세밀가귀’에 내놓았다. 다음달 중 1점이 더 들어오면 현전하는 9점 중 6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이런 특별한 자리가 가능했던 것은 리움이 다른 기관으로부터 나전경함을 빌려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물관과 미술관 간의 소장품 대여는 전시회의 깊이를 더해 관람객이 보다 다양한 유물을 접할 수 있게 한다.
어느 박물관이든 자신들의 소장품만으로 전시회를 못할 것은 없다. 하지만 전시회의 주제에 맞는 소장품을 다 갖추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메시지를 보다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유물 대여는 필요하다. 대체로 비슷한 형태와 문양을 한 나전경함을 굳이 힘을 들여가며 6점이나 한데 모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기량 전시운영과장은 “전시회 주제와 맞는 소장품이 있다고 해도 유물을 빌려오면 비교를 통해 메시지를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며 “다양한 유물을 한곳에 모아두고 보기 때문에 학술적, 예술적인 비교가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빌리는 쪽에서야 이런 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빌려주는 쪽에서는 유물의 관리·보존 등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까다롭게 전시 환경을 따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외부환경 변화에 민감한 유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전경함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9점만 전해지는 것도 보관·보존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박물관 관계자들은 “대여 대상에 예외를 두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하지만 빌려 달라고 해서 무조건 응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나름의 절차에 따라 적절성 여부를 검토하고, 특히 유물의 상태가 이동과 전시에 적합한지를 따진다. 리움이 일본에서 빌린 나전경함 2점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우리나라의 문화재청에 해당하는 정부기관의 검토를 거쳐야 했다.
리움의 ‘세밀가귀’ 전시회에 출품됐고,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려불화대전’에도 나왔던 일본 조코지(淨敎寺) 소장의 ‘아미타팔대보살도’. 고려불화대전을 준비할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들은 대여를 성사시키기 위해 소장자들을 설득하는 데 큰 공을 들였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이런 조건이 맞는다고 해도 가치가 큰 유물이라면 대여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10년 ‘고려불화대전’을 열기 위해 각지의 고려불화를 빌려올 때 협의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최광식 당시 관장은 “소장처를 끈질기게 설득하고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본 소장자들은 2010년이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되던 해라 한국에 빌려주면 다시 돌려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늘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유물 대여과정에서 오가는 돈은 얼마일까.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귀한 유물들이 오가지만 ‘대여료’ 명목의 돈은 없다. 박물관, 미술관이 기본적으로 비영리 기관인 데다 유물 대여가 박물관, 미술관 간 상호 교류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신뢰가 쌓이는 것은 물론이다. 다만 유물의 안전한 관리, 도난 등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험을 들게 되며 유물을 빌리는 쪽에서 이를 부담한다.
한 박물관의 관계자는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대여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극히 드물다. 유물은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상관없이 공공성을 갖고 있기도 해 대여료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보험료는 유물 구입 당시의 가격, 현재의 거래 가격 등을 고려해 책정하기도 하고, 희귀성이나 예술적 가치 등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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