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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뇌와 유전자, 파괴적 폭력을 낳다

입력 : 2015-08-21 22:49:30 수정 : 2015-08-21 22: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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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력 관여하는 ‘MAOA 유전자’ 변이
약물·알코올 남용·충동적 공격성 유발
에이드리언 레인 지음/이윤호 옮김/흐름출판/2만5000원
폭력의 해부 - 어떤 사람은 범죄자로 태어난다/에이드리언 레인 지음/이윤호 옮김/흐름출판/2만5000원


폭력과 범죄를 부르는 인간의 잔혹성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인간의 악행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묻지마 살인’을 막을 길은 없을까. ‘폭력의 해부’는 인간이 악행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는 운명적 한계론에 반기를 들면서 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을 찾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리처드 페리 대학 교수인 저자는 책에서 인간 잔혹성의 뿌리를 탐구한다. 그는 범죄인의 생리를 알기 위해 4년 동안 교도소에서 직원으로 일했고, 중범죄자 뇌 영상에 대해 최초로 연구한 학자다. 그는 35년 동안 폭력 행위자, 살인자,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등 범죄자들의 행동 원인을 연구했다. 연구 결과 특정 범죄자들의 행동은 유전자의 결함 또는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거나 정상적 작동을 멈춘 뇌 때문이란 점을 밝혀냈다.

신경범죄학 권위자인 에이드리언 레인은 ‘폭력의 해부’에서 ‘어떤 사람은 범죄자가 되고 다른 사람은 그러지 않는가’에 대한 해답은 유전자와 뇌에 있다고 분석한다.
흐름출판 제공
유전자의 결함과 관련해 저자가 밝혀낸 문제 유전자는 모노아민 산화효소A를 생산하는 ‘MAOA 유전자’다. 충동성 통제와 주의력, 기타 인지기능에 관여하는 유전자다. 이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키면 IQ와 주의력이 낮아지고 약물·알코올 남용과 충동적 공격성을 유발한다.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공격성과 폭력성이 40∼50% 일치한다. 어릴 때 헤어져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라도 반사회적 행동이 41%가량 일치한다. 범죄경력이 있는 부모에게 입양된 아이는 자라서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다. 저자는 유전자가 범죄 유발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고장난 뇌’도 범죄를 부르는 요인이다. 범죄자들은 위험한 상황에 처해도 두려움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에도 식은땀 따위는 흘리지 않는다. 이들은 전전두엽 피질, 편도체, 해마, 변연계, 각회 등 뇌의 특정 영역의 기능이 일반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저자는 교도소의 도움을 받아 복역 중인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비밀리에 뇌 영상을 주기적으로 촬영해 이 같은 통계적 결론을 얻어냈다.

신중한 성격의 냉혈적 범죄자는 전전두엽 피질이 통제된 반면 뇌의 저변에 있는 변연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래서 연쇄살인범들이 그렇듯 비교적 신중하고 계획적으로 범죄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긴다. 이에 비해 다혈질적 범죄자는 전전두엽 피질의 통제력을 상실해 화가 나자마자 곧바로 뚜껑이 열리고 눈을 깜박이기도 전에 피를 보고야 만다.

저자는 9·11테러가 일어난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 근처에 살았던 성인을 대상으로 테러 발생 3년 후 뇌 영상을 촬영한 결과 해마의 회백질 부피가 감소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심각한 충격적 상황이 뇌에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는 파괴적인 폭력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우수한 인재의 뇌가 고장났을 경우 엄청난 재난에 직면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잘못된 유전자를 줄이고 뇌를 정상인으로 돌려놓을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35년간의 연구와 실습을 통해 나름의 노하우를 제시한다. 우선 성장기 아동의 뇌를 정상으로 되돌려놓는 방법이 있다. 염려스러운 생물학적 성향이 아이에게 나타나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어릴 때의 치유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부모가 그럴 능력이 없다면 사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사회적·환경적 여건을 바꿈으로써 어린이의 뇌를 바꿀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뇌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법 중 하나로 명상을 꼽는다. 마음 깨우침 훈련은 뇌의 기능뿐 아니라 구조도 바꿀 수 있다. 실제 저자가 명상 훈련 이후 범죄 경력자의 뇌를 살펴봤더니 전전두엽 피질의 회백질 밀도가 상당히 증가했다고 한다.

오메가-3가 함유된 식품을 비롯한 영양보충제나 초기 환경개선, 약물 등도 뇌 구조를 바꾸는 유효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저자는 “폭력범죄자들의 초기 삶은 모성박탈, 신체적·성적 학대, 각종 트라우마, 빈곤, 영양 부족 등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았다”면서 “이런 사회적 장애가 안와전두피질, 내측전전두엽피질, 편도체, 해마, 측두엽같이 뇌에서 폭력과 관련된 특정한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불평등하고 비이성적인 사회에서의 박탈감도 두뇌 발달에 장기적인 손상을 가져오며, 이는 청소년기의 불안감과 공격성, 성인 시기의 폭력을 야기한다고 한다.

저자는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체포하여 격리할 수 있는 ‘롬브로소 프로그램’이라는 국가 정책 프로그램이나 자녀 양육능력을 평가하는 부모면허법도 미래 범죄 방지의 대안이라고 제안한다. 그는 범죄와 폭력의 원인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인 대화가 시급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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