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워런 지음/박산호 옮김/에쎄/2만2000원 |
‘싸울 기회’는 미국 민주당 초선 상원의원(매사추세츠주)의 정치 도전기다. 한 사람의 신념과 행동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주인공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은 애초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럴 생각도 없었던 하버드 로스쿨 법학 교수였다. 그녀가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파산법 전문가인 그녀는 2008년 금융구제프로그램(TARP)을 감독하는 의회 조사위원장에 임명됐다. 2000년대 후반 미국 경제는 급속히 추락한다. 투자자들은 저위험 고소득 투자처를 찾아다녔고, 그 조건에 들어맞는 시장이 주택담보대출 시장이었다. 대출 회사들은 위험 등급임에도 단기간 수입을 올릴 목적으로 대출을 승인해주면서 집을 사라고 부추겼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대출 회사가 파산하고 대형 은행들 역시 파산 위기에 놓였다. 그 사이 미국 중산층들의 재산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세계적인 보험회사 AIG가 도산 위기에 처하자 미 정부는 국민의 혈세인 막대한 구제자금을 투입했다. 검토위원이었던 워런은 이를 막을 권한이 없었다. 금융을 주무르는 은행가들과 관료들의 타락을 목도하면서 이대로 놔둬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은 힐러리 클린턴의 대항마로 거론되는 미 대선의 ‘잠룡’ 가운데 한 사람이다. |
2012년 사망한 테드 케네디의 빈자리를 물려받은 그녀는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선거에 나서 대승했다. 상대방은 ‘월가의 황태자’ 스콧 브라운이었다. 하원의원도 아닌 일개 법학자가 거물 정치인을 이긴 것이다.
워런은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을 경험했고 살기 위해 분투하는 어머니를 목격했다. 그는 자신이 어른으로 성장했다던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녀도 살기 위해 보모, 웨이트리스 등 온갖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학비를 마련했다. 그녀가 파산법을 연구한 것은 이런 팍팍한 서민의 삶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매년 80만명이 넘는 가족이 파산하고 있어요. 전국적으로 26초 간격으로 새로운 사람이 파산을 선언하고 있으며, 이런 일이 매시간,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지요. 미국에서 뭔가 끔찍하게 잘못되고 있는 데다 그게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요. 내가 가진 모든 걸 걸고 전투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워런과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이 원하는 것은 미국의 모든 아이들을 위한 미래다. 워런은 그 미래를 만들기 위해 물러서지 않고 싸울 결심이다. 워런은 “모든 것을 완전히 뒤엎을 순 없지만, 적어도 속도를 느리게 만들 수는 있다”면서 “변화는 힘들지만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고 거듭 강조한다.
워런은 유력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넘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힐러리의 ‘친월가’ 행태에 넌더리를 내는 골수 민주당원들은 워런을 힐러리 대항마로 지지할 결심을 보였다. 실제로 힐러리에게 워런의 기세는 위협적이다. 만일 워런이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다면 공화당 후보를 이길 것이라는 여론조사도 있다. 그녀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미국은 상당히 달라질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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