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의 새 영화 ‘사도’가 개봉과 함께 메가톤급 위력의 인기몰이를 하는 데는 부동의 ‘넘버 1’ 배우 송강호와 ‘차세대 넘버 1’자리를 예약한 유아인의 존재감이 크다. 15일 오후 총리공관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삼청동 지중해식 카페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왕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어요, 왕은 저럴 것이다라는. 하지만 전혀 다른 왕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극중에서 ‘넌 1년 중에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드냐’라는 영조의 물음에 ‘한두 번이요’라고 세자가 답하는 대목은 사료에 그대로 기록된 겁니다. 사석에서는 이처럼 편하게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영조 역의 송강호는 “수십년에 걸친 부자의 갈등을 단 두 시간 분량의 영화에 담아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영조의 실제 수렴청정 기간은 10여년이나 되었지만 영화에서는 이를 이틀간의 갈등으로 보여준다.
“어렵게 왕위에 오른 영조는 평생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립니다. 천민 출신 후궁에서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았죠. 아마 내 아들만큼은 나처럼 고통 받지 않게 하고 싶었을 테고, 그래서 세자에게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공부를 강요했을 거예요. 세자가 완벽한 군주로 성장하길 바랐을 겁니다. 30년 전 우리의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바랐던 기대와 지금의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원하는 바의 무게는 크게 달라요. 요즘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꼭 좋은 대학에 가라고 강요하기보다는 자유로운 인생을 살라고 할 만큼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250년 전 아버지가 아들에게, 특히 왕이 세자에게 바랐던 기대는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을 테죠.”
그는 영조와 자신의 공통점은 ‘자식과의 소통 부재’라고 털어놓으며 한바탕 웃어보였다. “속정이 있을 뿐 표현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윽박지르지는 않았어요. 스무살 아들이 어제 영화를 보고 와서 재밌다고 말해주니, 아버지와 아들 얘기는 공감할 수 있는 소재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뒤주를 바라보며 독백하는 장면은 영화적 표현이 강렬한 대목이다. 영조의 속마음을 드러내 보인다.
“다소 길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충분히 밀도 있게 오롯이 담아내는 영상문법이 매혹적이죠. 이 감독은 화려한 장면이나 기교를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기보다는 배우들을 통해 느낌을 전달하는 방법을 썼습니다. … 영조는 강한 군주예요. 아들의 죽음을 보고 나서도 ‘개선가를 울려라’고 주변에 명합니다. 왕권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는 장면인데, 권력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개봉에 대해 ‘기분 좋은 부담감’이 있다고 솔직히 털어놓는 그는 흥행 결과야 어떻든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며 후배 유아인을 챙기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동안 광인 연기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한 번쯤 잔재주를 부릴 법도 한데, 오로지 자신의 감정을 끌고 가는 아인이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대견스러웠어요.”
유아인은 이에 대해 “얕은 수를 쓰면 반드시 들통난다”며 “항상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부자간이란 서로 인정받고 극복하고 싶은 대상일 테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사도세자 역할에 대해 자신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이해하며 해석한 뒤 풀어냈다고 한다.
“10년 연기의 유아인에게 ‘사도’가 지닌 의미가 어떤 것인지는 다들 아실 거예요. 지독한 감정들을 꼭 표현해 보고 싶었던 작품입니다. 이제는 더 능수능란하고 매끄럽게 할 수 있거든요. 튀고 싶어 안달하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적당히 조절할 수 있고, 뭐가 내 것이고 내 것이 아닌지 판단할 수도 있어요. 드러내고 싶은 것과 가리고 싶은 그 적정선을 안다는 거죠.”
그는 상대 배우가 누구이던 감정선을 놓치지 않고 흐름을 타면서 자신의 색채를 강렬하게 드러내는 배우다. 남들이 20여년 걸려 터득한 것들을 이미 능숙하게 펼쳐보일 줄 안다. 더구나 그가 이제야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시점에 서 있다는 것은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풀어내고 보여줄 테니.
“사실은 집에서 혼자 그림 그리고 글 써야 하는 성격인데, 내성적인 데다 낯가림도 심해서…. 배운 것도 없는데 (선배니깐) 많이 배웠다고 말하는 게 싫고, 동갑이면 무조건 친구 먹어야 하는 것도 불편하고, 후배들이 다가와 선배님이라 부르는 것도 달갑지 않아요. 촬영 현장에선 친해지기 위해 골몰하거나 신경 쓰면서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저 연기에 몰두하고 싶어서요. 물론 인간은 자신을 열어두면 끊임없이 배우게 되는 존재죠. 몹시 더러운 것을 보더라도 더러움이 뭔지를 깨닫는 거니깐. 하지만 없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뭐든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게 좋아요. ‘쿨’하다는 게 그런 것 아닌가요. 갑갑하지 안고 선입견 없이 자연스러운 것….”
유명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도 “뭘 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우선 폭넓게 생각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말해두고 싶다”고 선을 긋는다.
“예술가란 말을 듣기에 떳떳할 수 있는 태도를 견지하며 살 겁니다. 후대에 어떻게 불리고 평가받을지는 결국 지금의 제가 만들어가는 것이니….”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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