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입차 판매량 3위, 개인 구매량 1위인 폴크스바겐은 비교적 싼 3000만~4000만원대의 모델 판매량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동일 가격대 모델이 주력인 토요타와 닛산·미니·혼다·포드 등이 폴크스바겐 사태의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3일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올 1~8월 3000만~4000만 원대의 수입차 브랜드 중 폴크스바겐이 가장 많은 2만597대를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폴크스바겐 전체 판매량(2만4778대)의 83.1%에 이른다. 인기 모델은 판매량 1위인 티구안(6069대)과 2위인 골프(4728대) 등이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폴크스바겐 사태로 사정이 달라질 분위기다. 폴크스바겐의 정상적인 영업이 어렵게 되면서 동일 가격대의 다른 브랜드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1~8월 토요타의 3000만~4000만원대 모델 판매량은 3999대로 전체 판매(5007대)의 79.9%를 차지했다.
폴크스바겐 판매량보다는 크게 뒤지지만 수입차 브랜드 중 2위에 올랐다. 대표적인 모델은 캠리(1709대)와 스포츠유틸리티(SUV) 모델인 라브4(1185대)다. 폴크스바겐의 베스트셀링카가 SUV인 티구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라브4가 폴크스바겐 사태의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형 세단인 캠리의 경우 폴크스바겐의 2위 판매 모델인 골프 소비자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토요타 외에 3000만~4000만원대의 모델 판매량이 많은 브랜드는 닛산과 미니로 각각 3224대, 3189대로 집계됐다. 각 브랜드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닛산은 캐시카이(1765대), 미니는 미니쿠퍼D 5도어(1373대)였다. 미니쿠퍼는 세그먼트 면에서 골프 소비자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모델이다.
이어 ▲혼다(2573대) ▲포드(2119대) ▲BMW(2113대) ▲아우디(1185대) 등이 3000만~4000만원대 모델을 1000대 이상 판매했다. 이 중 포드 몬데오(864대)는 15.9km/l의 고연비로 골프와 비교 대상 모델로 관심을 끌고 있다. BMW 118d어반(2113대)은 동급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모델이다.
아우디 A3 25TDI(721대)도 올 들어 다크호스로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폴크스바겐에 이어 아우디의 조작 사건도 추가로 확인되는 등 독일계 전반에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 비독일계 브랜드가 반사이익을 누릴 개연성이 높다.
국내 완성차 중에서는 ▲현대차의 투싼 ▲기아차의 스포티지 ▲한국지엠의 트렉스 ▲쌍용차의 티볼리 ▲르노삼성의 QM3 등 인기 SUV 모델이 폴크스바겐 티구안의 소비자를 얼마나 끌어들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반면 이번 폴크스바겐 사태로 얻을 단기적 반사 이익은 지난 2009∼2010년 도요타를 덮친 대량 리콜 사태 때보다 적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이항구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위원이 연구원 블로그에 올린 ‘자동차산업의 환경변화와 업계 대응 방안’ 보고서를 보면, 이 위원은 “국내 완성차 업체와 독일 폴크스바겐 간의 세계 시장에서의 경합도는 일본 도요타와의 경합도보다 낮다”고 지적했다.
즉, 현대·기아차 등은 세계 시장에서 폴크스바겐보다는 도요타와 훨씬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므로 이번 사태로 얻을 이익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는 이번 사태로 국내 업체와 일본 업체들과의 가격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업체들이 그동안 엔화 약세로 인한 환차익을 수익 제고에 활용했으나, 폴크스바겐 사태를 계기로 가격 인하 전략을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폴크스바겐은 이번 사태로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지만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의 규제로 중국에선 디젤차를 거의 판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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