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대성당 나란히 있는 낯설고도 묘한…
‘태양의 나라’ 역사·전설 한국인 시각으로 담아
서희석, 호세 안토니오 팔마 지음/을유문화사/1만5000원 |
지구상에서 중국어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쓰는 말이 스페인어다. 넓은 땅덩어리만큼이나 다양한 인종이 한데 섞여 사는 이 나라는 세계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서남부와 중남미, 아르헨티나, 프랑스 남부 등은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근·현대를 거치면서 영·미세력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지만 15세기엔 대항해시대를 열면서 유럽 패권을 차지했던 스페인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스페인의 역사는 가우디 같은 건축 관련 이야기나 여행 책이 주를 이룬다. 세르반테스의 불후 명작 ‘돈키호테’ 또는 무적함대를 가졌던, 한때 강대했던 나라 정도로 알려진 것도 영·미문화권의 영향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인 시각에서 스페인 역사를 다룬 첫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스페인은 무적함대를 앞세워 세계의 바다를 호령했다. 사진은 스페인 무적함대의 전투장면을 그린 그림. 을유문화사 제공 |
15세기를 전후해 스페인이 유럽 패권을 차지한 건 원양 항해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재화 덕분이었다. 무적함대가 영국 함대에 격침되기까지 스페인은 유럽의 패자였다. 편서풍의 위력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스페인은 대서양 루트를 개척하고 신대륙을 발견했다. 유럽의 역사를 바꾼 대항해시대를 연 스페인의 역사는 곧 유럽의 성장사라 할 만하다. 역사상 처음으로 해가 지지 않는 식민제국을 만든 나라는 영국이 아니라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은 여러 민족이 섞이면서 성장해 온 나라다. 스페인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그 땅을 차지했던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게르만족, 무슬림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걸 의미한다. 오늘날 스페인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이슬람풍 모스크와 기독교 대성당은 이 나라의 복잡다단한 역사를 상징한다. 전 세계에서 4억5000만명이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어가 사용되는 땅 크기만 따지면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범위에서 사용되는 말이 스페인어다.
책에서는 로마시대였던 서기 69년 스페인에서 재무관으로 일했던 카이사르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진다. 카이사르는 성벽이 적에게 침범당하지 않고 영원히 굳건하길 바라면서 마카레나 성벽 밑에 애인이 낳은 쌍둥이 아들 중 한 명을 죽여 묻었다고 한다. 이 지방의 중심도시 세비야 시내에는 지금도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와 카이사르의 동상이 나란히 서 있다. 당시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로마와 카르타고 간 전쟁의 무대가 된 곳도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이 고대 지중해의 정치·경제의 중심지였다는 얘기다.
저자들은 그리스신화에서 시작해 로마시대, 서고트 왕국, 이슬람시대, 가톨릭 왕국의 재정복, 카스티야 내전, 대항해시대까지 고대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역사를 일별하면서 책을 서술했다. 이탈리아 출신 탐험가인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왕을 설득해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 경위와 대항해시대를 개척한 펠리페 2세의 아기자기한 사랑얘기도 재미있게 정리했다. 저자 서희석씨는 현재 스페인에 정착해 살고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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