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냘레스 골목에서 찾은 체 게바라. |
우산을 써도 비를 다 맞을 수밖에 없다. 숙소 옆집이 레스토랑인데,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이다. 언니들과 함께 뛰어서 옆집을 향했다. 쿠바에서 먹었던 스파게티는 완전하게 불은 면으로 만들었다. 소스가 맛있어도 면이 아쉬워서 맛없는 스파게티만 먹었다. 그래도 한 번 더 도전하는 생각으로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해산물 스파게티에는 랑고스타(바닷가재)가 들어 있었고 면도 정상적이며 훌륭한 맛이었다.
밥을 다 먹었는데도 장대비가 그치지 않는다. 숙소에서 나올 때는 우리 모두 허기져서 이 장대비를 뚫고 나왔지만, 배가 부르니 빗속을 헤쳐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식당에서 오래 머물기 위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우리 셋은 테이블에 앉아서 수다로 빗소리를 뚫고 있었다. 그때 식당에서 일하는 젊은 여자가 우리에게 수줍게 말을 걸어왔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라고 물으며 기대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국”이라고 말하는 순간 가까이 다가와서 어찌할 줄 모르며 좋아했다. 한국이라는 말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쿠바인이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좋아했던 이유를 설명해주니 이해가 됐다. 한국 드라마 열풍이 쿠바까지 이어졌던 까닭이었다. 그는 우리가 모르는 드라마까지 알면서 우리나라 연예인을 좋아한다면서 우리까지 좋아했다. 친구까지 데리고 와서 한국 이야기를 들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도 까르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소녀들이 좋아하는 표정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그는 우리가 나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에는 다행히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밤 9시부터 광장에서 밤새도록 음악과 춤이 있는 축제가 있다고 들었다. 비를 맞아서인지 나는 몸이 으스스 추워서 일찍 잠들었고, 그 사이 언니들은 광장으로 나갔다. 다음날 들은 이야기로는 축제답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음악도 흐르고 있었단다. 하지만 사람들이 멀뚱히 가만히 서 있기만 하고 재미없어서 일찍 들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쨍쨍 비치고 따뜻한 기운을 줬다.
비냘레스에는 마늘 파는 아저씨가 있다. |
미국과 관계를 회복하고 있지만 아직 시골 마을 비냘레스에서는 그 휴대전화가 유니크한 제품이다. 작은언니에게는 옛날 휴대전화이고 안 쓰는 것이라서 추억의 물건일 뿐이다. 작은언니는 “언제 팔 거냐”고 물어보는 그에게 “마냐나(Manana·내일)”라고 외치면서 놀렸다. 다음 날도 마냐나라고 말하자 그는 실망해서 돌아섰다. 그러면서도 작은언니에게 잘 보이려고 피나콜라다도 만들어줬다. 떠나기 전날 드디어 마냐나가 아닌 “아오라”(Ahora·지금)라고 했더니 덩치 큰 카를로스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물론 그가 돈을 낸 건 아니다. 그는 우리 숙소 주인인 엄마에게 떠넘겼다. 우리 방값이 깎이는 순간이었다.
비냘레스를 떠나지도 못한 채 길에서 시간을 보냈다. |
다음 날 버스를 알아봤지만 아침 버스 한 대가 유일하다. 다음 여행지는 ‘시엔푸에고스(Cienfuegos)’다. 아바나에서 동남쪽으로 230㎞ 떨어진 곳이다. 버스 요금 세 명치면 택시를 타고 이동해도 비슷한 가격이다. 급하게 구한 차를 보는 순간 굴러갈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차는 비냘레스를 떠나기 전에 멈춰 섰다. 운전사는 시동을 걸기 위해서 전선을 연결해야 했고, 차를 수리해야 했다.
멈춰선 차 덕분에 만나게 된 사람들. |
비냘레스를 떠나면서 다시 한 번 산을 바라봤다. |
낮은 언덕 위에 큰나무 한 그루는 오랜 시간을 말해주면서 이곳을 지켜온 늠름함을 보여준다. 하늘을 보면 독수리가 배회하는 모습이 마치 지금 우리 모습 같다. 유유자적 걸어다니는 동안 차를 고쳐서 다시 시엔푸에고스로 출발했다. 어쩌면 비냘레스가 떠나기 아쉬웠던 우리의 마음을 알았던 걸까.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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