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으로 갈라진 형제들 갈등과 화해 담아
베트남판 ‘태백산맥’… 출판 당시 판금 되기도
호앙 밍 뜨엉 지음/배양수 옮김/도서출판 b/1만8000원 |
베트남 전쟁 와중이었다. 하노이 의대를 졸업한 27살의 여성 군의관이 야전병원에서 미군 폭격기의 폭격에 전사했다. 폭격 직후 들이닥친 미군 정보부대 병사가 서류 더미를 분류하다 그녀의 일기를 발견한다. 미군 병사가 무심코 불태우려 하자, 베트남군 통역병이 “태우지 마시오, 그 속엔 이미 불이 있소”라고 소리를 지른다. 미군 병사는 일기를 품 속에 넣고 귀국해 텍사스텍대학교 베트남센터에 기증했다. 그는 전쟁 이후 30년이 지난 2005년 하노이에 살고 있는 그녀의 부모를 만나 딸의 생사와 일기에 얽힌 그간의 사정을 전달한다.
베트남 중견 작가 호앙 밍 뜨엉은 그녀의 일기를 토대로 이 소설을 썼다. 2008년 출간 직후 당국의 배포금지 결정이 내려졌다. 판금의 이유는 출판법 위반이었다. 그러나 대다수 베트남 사람들은 달리 생각한다. 당국이 이 소설을 불온한 것으로 딱지를 붙였다는 것이다.
저자 호앙 밍 뜨엉은 지주 계급에 속하는 가족의 흥망성쇠를 토대로 베트남 현대사를 시각적으로 그려낸다. 도서출판 b 제공 |
이 소설은 부유한 응웬끼 가문의 역사를 테마 삼아 베트남현대사를 그리고 있다. 가장인 응웬끼는 공산혁명 직후 실시한 토지개혁 과정에서 지주로 몰려 자살하고 가문은 몰락한다. 자식들은 격동의 역사 속에서 제각각 생명을 이어간다. 공산당 간부로 또는 시인으로, 남베트남 공무원이나 고향을 지키는 장애인으로 흩어져 살아간다. 몇 십년이 지난 뒤 마침내 자식과 손자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힘을 합쳐 ‘응웬끼비엔(阮奇園)’이란 이름의 가문을 다시 일으켜세운다는 이야기다.
작가는 공산혁명이 성공한 베트남에서 아직 민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물론 작가는 프랑스에 맞선 공산당의 해방 투쟁, 베트남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산당 정부를 일정 부분 긍정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혁명 동안 베트남의 고유한 전통은 몰락했다고 지적한다.
처음 일기를 쓴 군의관은 호찌민 군대의 여성 장교였다. 말하자면 공산혁명군의 엘리트였다. 혁명 엘리트의 일기 속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다는 것은 공산당 정부로선 민감할 수밖에 없다. 출간 당시 베트남 당국이 판금한 이유다. 베트남은 유교문화권이며 오랜 기간 프랑스 식민지 시대를 견뎌냈다. 그리고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인 베트남전으로 국민은 죽을 고생을 했다. 아직도 초토화된 국토가 널려 있다.
한국 독자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이다. 출판사 측에서는 베트남판 ‘태백산맥’이라고 평가한다. 베트남 민주공화국 수립 70주년이자 베트남 통일 40주년이 되는 해에 이 책이 나왔다는 의미가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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