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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임신이 무슨 벼슬이냐" 임산부 배려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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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0-10 06:00:00 수정 : 2015-10-15 14:3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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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핑크카펫’ 일반승객 독차지
임신 후에도 사회생활을 이어나가는 여성들이 늘어난 만큼 대중교통에서 임신부 배려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 지하철에는 2009년부터 노약자석 외에 임산부 배려석이 마련됐고, 2013년 한 칸에 두 좌석씩 좌석 뒤에 스티커를 붙여 임산부 배려석을 표시했다. 이마저도 승객이 앉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최근에는 좌석 뒷면과 바닥에 핑크색 시트지(핑크카펫)를 붙여 눈에 띄게 만드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시민 간의 의견 대립은 심해지고 있다.

임신 중이거나 임신·출산 경험이 있는 젊은 여성들은 임산부 배려석 지정을 환영하는 편이다. 임신부는 초기부터 말기까지 신체적 고통이 따르고, 저출산 시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뱃속 아기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듯 임신부를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배려석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임신부는 많지 않다. 임신하지 않은 승객들이 배려석을 차지하고 임신부임을 알고도 양보해주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회원이 237만명에 달하는 인터넷 임신·육아 정보 카페 ‘맘스홀릭베이비’가 10일 ‘임산부의 날’ 배려 캠페인의 일환으로 모집한 사연을 보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임신부들의 고충이 드러난다. 만삭의 임신부가 지하철에 탔는데 아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결국 일반석에 앉아있던 4개월차 임신부가 자리를 비켜줬다는 이야기, 누가 봐도 임신부인 사람이 배려석에 앉으려고 다가가는데 군인이 새치기했다는 이야기, 배려석에 자리가 비어 임신부가 무거운 배를 안고 앉으려는 순간 옆좌석 중년 여성이 팔꿈치로 밀어내며 멀리 앉은 일행에게 같이 앉자고 손짓했다는 이야기 등 사연도 가지가지다.

지난달 출산한 윤모(32)씨는 “만삭의 몸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자리를 양보받은 적은 두 번뿐”이라며 “배가 나온 임신부도 배려하지 않는데 이럴 거면 서로 기분 상하게 배려석은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9일 발표한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임신부 2700여명중 임신 중 배려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절반가량인 58.3%에 불과했다.

반면 임산부 배려석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만만치 않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임신부가 환자도 아닌데 왜 좌석까지 따로 만들어 양보해야 하나”, “지하철 이용하는 직장인, 학생들도 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인데 왜 임신부만 배려를 해야 하는가”, “다른 빈자리가 없으면 앉을 수 있는 건데 핑크색으로 표시하니 앉으면 죄인이 되는 기분이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여기에 “임신이 벼슬인 줄 안다”, “임신했다고 무슨 혜택을 보려는 맘충(엄마벌레)들” 등 임신부에 대한 배려 자체에 반감을 갖고 있는 듯한 과격한 의견도 빠지지 않는다.

배려석에 앉지 못해 노약자석에 앉은 임신부가 노인들과 충돌하는 일도 잦아졌다. 최근 한 남성은 SNS에 “임신부인 아내가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일어서라고 요구하는 노인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며 목격자를 찾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임신부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부족한 이유는 대부분 임신부를 잘 알아보지 못하거나, 그들의 각종 어려움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신부들의 적극적인 의사 표시도 필요하다. 하지만 임신부들은 먼저 양보해 달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워 한다. 배가 나오지 않은 초기 임신부들은 더욱 그렇다. 초기 임신부도 배려를 받을 수 있도록 복지부에서 배포한 임산부 배려 앰블럼이 부착된 가방고리와 카드지갑이 있지만 그걸 달고 있어도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섣부른 정책 추진과 홍보 부족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족사회학자인 김선영 국민대 교양과정부 교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출산장려 정책이라며 무언가를 내놓고, 오히려 역차별 논란을 일으켜 사회적 갈등만 부추겼다. 여성전용주차장과 같이 실패한 정책이 될까 우려된다”며 “임산부 배려석 확대와는 별개로 임신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임을 시민들이 인식하고 자연스럽게 임산부를 배려하는 문화가 조성되도록 정부 차원에서 홍보와 교육, 캠페인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현재 진행 중인 핑크카펫 확대 사업 자체가 시민들의 인식 확산을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현재 도시철도 내 임산부 배려 홍보 활동은 포스터와 안내방송뿐이다. 안내방송은 한 구간 운행에 한 번꼴로 한다. 열차 내 홍보 영상은 따로 없다. 서울 메트로는 “안내방송을 자주하거나 홍보영상을 틀면 시민들이 민원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임산부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올해 보건복지부의 임산부 배려 관련 예산은 5500만원으로 내년에도 거의 같은 수준이 될 예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우선순위에 따라 복지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시간이 필요한 캠페인이나 홍보 등을 확대하기는 힘든 측면이 있다”며 “홍보 부족의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으며 앞으로 임산부 배려 문화 조성과 시민의식 제고를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임산부의 대중교통 이용 사례들

◆ 불편한 진실

사례1:“임신 마지막 달 만원 지하철에서였어요. 배를 감싸안고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10분 정도 버텼는데 어지럽고 배가 당기고 식은땀이 나서 쓰러질 것 같았어요. 도저히 안 되겠어서 앞좌석 젊은 남성분께 “제가 임신부라 힘들어서 그런데 자리 좀 양보해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부탁했더니 “힘들면 내려서 택시 타세요!”랍니다. 너무 민망해서 다음 역에서 내렸습니다. 언제부터 세상이 이렇게 각박해졌나요. 눈물 겨우 참으면서 택시 타고 왔네요.”

사례2 :“임산부 배려석에 자리가 났길래 앉으려고 다가갔는데 4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잽싸게 앉으면서 저를 위아래로 훑어봤어요. 임신부에게는 그림의 떡인 임산부 배려석이네요.”

사례3 :“배가 나오지 않은 초기 임신부인데 입덧이 너무 심해서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아저씨께 조심스럽게 부탁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제 배를 쳐다보면서 임신부라는 증거를 대보라고 하더라고요. 산모수첩을 꺼내 보여줄 수도 없고 난감했습니다.”

사례4:“20∼30대 임신하지 않은 여성들도 자리 양보 안 해줍니다. 언젠가 엄마가 될 텐데, 얼마나 힘든지 미리 생각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임신 전에는 전혀 몰랐거든요.”

사례5 :“임신한 몸으로 대만에 여행을 갔는데 대중교통 임산부 배려석 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시민들이 친절하게 양보하고 배려해주는 모습에 감동 받았어요. 임신부가 있든 말든 자리가 나면 먼저 앉는 한국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씁쓸했습니다.”

◆ 행복한 진실

사례1:“임신 기간 동안 자리 양보를 받아본 적이 없고 마지막 달이 되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눈치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하루는 지하철에서 웬 아저씨 한 분이 제게 자리를 양보해주셨고, 그다음 날 첫아이를 순산했습니다. 정말 별거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분의 양보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네요.”

사례2:“마을버스에 탔는데 자리가 없었어요. 손잡이를 꼭 붙잡고 가는데 누가 옷을 잡아당겨서 보니 7∼8세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가리키면서 앉으라고 하고는 엄마에게 가더군요. 너무 고마웠고 양보한 아이와 칭찬해주는 엄마 둘 다 참 예뻐보였어요. 저도 저런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례3:“버스에 탔는데 사람은 많고 자리는 없고, 배가 나와서 허리가 아픈데 앞이 깜깜했어요. 그때 20대 중반으로 보이던 남자 분이 가방을 주섬주섬 메고 일어나길래 내리는 줄 알았는데 옆에 가서 서 계시더라고요. 자리를 양보해준 거였어요. 자리에 앉은 뒤 눈이 마주쳐서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출처:임신·육아 정보 카페 ‘맘스홀릭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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