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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ADEX에서 특수비행을 선보이고 있는 미 공군 F-22 전투기. 사진=공군 |
20일부터 25일까지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
이번 ADEX는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참가업체도 지난 2013년 28개국 361개 업체에서 올해는 32개국 386개 업체로 늘었다. 국내 업체는 208개, 해외업체는 178개다.
1580개 부스가 운영된 실내에는 항공기, 첨단 우주기기, 최신 무기 실물과 모형, 시뮬레이터, 무인기 등이 다양하게 전시됐다.
하늘에서는 미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F-22 ‘랩터’가 특수비행에 나서 눈길을 사로잡았다. 국산 KT-1, T-50, 수리온 헬기와 F-15K, KF-16 등 전투기가 전시됐다. 지상장비로는 K-2, 전차, K-9 자주포, K-21 보병전투장갑차 등이 국내 방위산업의 수준을 국내외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김명호 서울 ADEX 공동운영본부장은 지난 19일 미디어 데이 행사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한 국내 방위산업과 항공우주산업의 미래를 ADEX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해외 업체 비즈니스 위주로 진행됐던 과거와 달리 올해는 국내 업체의 참가를 확대해 이들이 직접 생산하고 제작한 기술과 제품을 보여준다는 데서 행사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형전투기(KF-X) 개발과 방산비리를 둘러싸고 논란이 그치지 않으면서 벌써부터 ‘흥행 참패’ 논란이 일고 있다.
◆ “셀러(Seller)만 있고 바이어(Buyer)는 없다”
김 본부장의 말처럼 이번 ADEX에서는 해외 업체들의 활동이 다소 위축된 반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국내 업체의 참여가 늘어났다.
2011년 ADEX에서 차기전투기(F-X) 사업과 관련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던 미 보잉은 이번 ADEX에서 전시장 부스 규모를 줄였다. 록히드마틴 역시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이벤트를 하지 않았으며, 에어버스도 민수 분야와 A400M 수송기 마케팅 외에는 눈에 띄는 활동이 많지 않았다.
글로벌호크 제작사인 미 노스롭그루먼은 ADEX 후원자로 나서는 등 활동은 활발했지만 정작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글로벌호크 실물은 전시하지 못했다. 헬기 제조업체 벨 역시 훈련용헬기 사업을 염두에 두고 판촉활동을 펼쳤지만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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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전시장에 전시된 항공기들. 사진=공군 |
반면 중소기업과 국방과학연구소 등 국내 연구기관, 해병대 등의 부스는 규모가 커지고 행사도 다양해졌다.
대기업들 역시 한화탈레스가 9월부터 내년 12월까지 29억원을 투입해 개발중인 목함지뢰 탐지가 가능한 차기 지뢰탐지기와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의 핵심인 L-SAM 레이더 등을 공개했다. LIG 넥스원 역시 한국형 시 스패로우 함대공 미사일인 ‘해궁’과 차기 고속정에 탑재될 130mm 유도로켓 등을 전시하며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ADEX에 여러 차례 참가한 국내외 방산업계 관계자들은 “외화내빈이다”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2000년대부터 ADEX에 여러 차례 참가했다는 해외 방산업체 관계자는 “ADEX 열기가 가장 높았던 시기는 2011년 F-X 사업을 놓고 3개 회사가 경쟁하던 때였다”며 “그때와 비교해보면 이번 ADEX는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 같다”고 평했다.
그는 “통계상으로는 참가업체 수가 늘어났다고 하지만 방산비리로 대기업들의 활동이 위축된 상황인데다 야외 전시장의 무기들도 F-22를 제외하면 예전에 공개됐던 것들이 많아 크게 눈길을 끌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국내 국방연구기관 연구원도 “사람도 많고 전시물도 많지만 묘하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며 “한국형전투기(KF-X) 개발 사업에 참여해보려는 해외 업체들의 부스는 활기가 넘치지만 다른 부스들 중에는 관계자들이 자리를 비워 텅 빈 곳도 있었다”고 전했다.
국내 방산업체 관계자는 “장비를 팔겠다고 하는 사람과 업체는 넘쳐나지만 정작 이를 사겠다는 바이어는 없는 전시회”라며 “의미있는 수준의 계약이 어느 정도 이루어질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 “1년 내내 ‘방산비리’ 수사하더니 무기수출하라고?”
본래 방위산업 전시회의 경우 해외 업체들보다는 국내 업체들이 ‘흥행 분위기’를 주도해야 한다. 전시회의 목적인 수출 마케팅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다.
때문에 ADEX 운영본부에서도 국산 무기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중점을 뒀다.
그러나 전시장에서 만난 국내 방산업체 관계자들의 머릿속에는 ADEX보다 다른 것들이 우선순위를 차지한 듯 보였다.
한때 방위사업청에서 근무했다는 방산업체 관계자는 “나 뿐만 아니라 다른 (국내 방산업체) 사람들도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ADEX가 아니라 서초동에서 하고 있는 방위사업 비리 수사”라고 말했다.
그는 “수사 결과에 따라 업계에 불어닥칠 후폭풍이 달라질 수 있으니, ADEX에 온전히 신경을 쓸 수 있겠는가.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방산업계 관계자도 “1년 내내 우리를 비리집단으로 몰아붙이더니, 이제 와서 수출 마케팅을 하라고 한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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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X 상상도. |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KF-X 사업도 ADEX에 악재가 됐다. 사브나 IAI, 셀렉스, 유로제트 등 KF-X의 핵심 항공전자장비와 관련이 있는 해외 업체들은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며 자신들의 장점을 홍보한 반면, 국내 업체와 연구기관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어 버렸다.
22일 공군본부 연구분석평가단이 주최한 제8회 민군 협력 무기체계 발전 세미나에서는 미국이 체계통합 기술이전을 거부한 4개 핵심분야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장비 소개와 해외 개발 현황만 소개돼 정보에 목말라하는 관계자들의 원성을 샀다.
ADD가 한국방위산업학회 주최 국제방산학술 세미나에서 발표한 ‘KF-X 개발과 국제협력’이란 주제 역시 “하나마나한 소리”라는 불평을 들어야 했다.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ADEX를 찾았다는 연구기관 관계자는 “KF-X는 방산업체 주도로 사업이 진행되는데, 그렇다면 업체들끼리 경쟁하며 서로의 의견을 발표해 사업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그런데 국내 기관과 업체들은 언급도 없으니 기가 막힌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ADEX는 경기에 매우 민감해 대규모 무기 도입 사업이 있으면 열기가 뜨겁지만, 그렇지 않으면 가라앉는 특성이 있다”며 “이러한 ‘롤러코스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산 무기 수출을 위한 판촉의 장으로 ADEX를 활용해야 하며, 이번 ADEX는 그 첫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국산 무기 개발 사업’인 KF-X가 명확한 전략조차 확정짓지 못한 채 표류하고, 방위사업 비리 수사로 업계 분위기가 뒤숭숭한 상황에서 ADEX 흥행은 어렵다는 게 방산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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