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은 오래전부터 교류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일본에서 한류 바람이 불어 드라마, 대중음악, 음식까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최근 양국 관계를 보면 찬바람이 쌩쌩 분다. 며칠 전 한 일본인 지인은 양국 관계에 대해 얘기하다가 불쑥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장 먼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 오른쪽으로 태평양을 건너 미국, 유럽, 중동, 중국을 거치고 나서야 닿을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설명했다. 엉뚱하긴 했지만, 지금의 양국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얘기였다.
우상규 도쿄 특파원 |
그러나 가해자인 일본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더는 사과를 하지 않겠다는 듯한 분위기다. 일본 정부 내에서는 “이번에 사과해도 나중에 이 문제가 또 불거지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서 해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일본 정부의 모든 책임은 끝났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 정부가 화해를 원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최근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이 “휴전선 남쪽이 한국 영역”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한국의 헌법에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영토를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일본 방위당국 최고 책임자가 모를 리 없다. 물론 국제사회의 인식은 한국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왜 하필 이 시점에 그런 말을 꺼냈을까 궁금하다. 최근 개각 때 입각한 각료들이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당당하게 참배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양국 정상이 직접 만나서 한·일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 다음달 초 서울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한·일 두 정상이 따로 만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결국 과거사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사과다. 진심이 담긴 사과만 있다면 용서와 화해까지 거침없이 진전될 수 있다. 그런데 우익 세력의 지지 기반을 등에 업고 역사수정주의로 의심받는 행보를 보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베 총리는 좋은 사과 기회였던 지난 8월 ‘전후 70년 담화’ 때 오히려 전후 세대가 인구의 80%를 넘어섰다며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도 전후세대다. 결국 과거사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기대의 끈을 놓고 싶지는 않다.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고 하지 않던가. “지지율이 떨어져도 할 일은 해야 한다”며 안보법을 밀어붙일 때처럼 아베 총리가 “우익 세력이 반발하더라도 매듭지어야 할 문제”라며 지도자의 결단을 보여주는 모습을 꿈꿔본다.
우상규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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