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그리는 행위를 배제하는 대신 종이를 자르고, 찢고, 뚫고, 붙이는 등 신체성이 강조된 평면작업을 통해 독자적인 회화적 제스처를 심도 있게 전개했다. 평평한 표면 위에 여러 겹으로 붙여진 한지는 입체감과 리듬감을 형성한다. 신체적인 행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찢겨지고 긁힌 종이 결 위로 다시 종이 결이 파편화되어 겹쳐지면서 그 사이에 먹과 푸른 잉크 얼룩이 물들고 채워지는 기법이 두드러진다. 먹이 흘러내리고, 찍히고, 종이의 표면에 스며드는 우연적 현상을 반복적으로 즐겼다. 한지와 먹을 기반으로 한 실험적인 그만의 독창적인 회화 언어라 할 수 있다. 동양비학의 핵심인 기운생동을 담백하면서도 역동적인 작품으로 구현했다는 평가다.
권 화백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1기로 입학하여 박노수, 서세옥, 장운상, 박세원과 함께 수학했다. 1965년 제8회 도쿄비엔날레, 1973년 제12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1975년 동경화랑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의 흰색’전,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전시 ‘단색화전’ 등에 작품이 출품됐다. 1970년대 후반 프랑스로 이주하여 작품에 전념한 작가는 1976년 파리 자크 마솔 화랑 개인전을 시작으로 1990년 호암미술관,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007년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01년에는 은관문화훈장, 2003년 허백련상을 수상했다.
편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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