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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로 얼룩진 인류사… “인간은 왜 잔인한가”

입력 : 2015-11-07 03:00:00 수정 : 2015-11-07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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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선적이었던 베토벤, 교활했던 디포… 내적 에너지 방향 돌려 천재성 발휘
저자 “범죄는 진화의 불행한 노폐물, 좌뇌형 천재들 목적 달성에만 몰두”
욕망 향한 탐닉 극복할 희망으로 인류에게 남은 ‘종교적 열정’
콜린 윌슨 지음/전소영 옮김/알마/4만2000원
인류의 범죄사- 인류의 시작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범죄의 역사/콜린 윌슨 지음/전소영 옮김/알마/4만2000원


영국의 비판적 저술가 콜린 윌슨(1931∼2013)이 쓴 ‘인류의 범죄사’는 지구상에서 동족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의 잔인성 원인을 규명한다. 변역·출간된 ‘인류의 범죄사’는 윌슨을 유명 저술가 반열에 올린 1000여 쪽 분량의 역작이다.

‘로빈슨 크루소’의 작가 대니얼 디포(1660∼1731)가 교활한 사기꾼, 협잡꾼이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인생 초반 명석한 두뇌와 빼어난 글 재주, 말솜씨 덕에 정치 협상가로 큰 역할을 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통합해 대영제국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갖게 된 디포는 거액의 정부 돈을 빼돌리다 들통나 6년간 감옥에서 살았다.

콜린 윌슨은 ‘인류의 범죄사’에서 인간의 범죄성과 폭력성의 근원을 탐구한다. 그림은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 뒤부아의 작품 ‘성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로, 1572년 로마 가톨릭교회 추종자들이 개신교도를 학살한 사건을 묘사했다.
알마 제공
말년에는 정치논객, 협잡꾼, 사기꾼의 삶을 그만두고 낙향한다. 때마침 무인도에 버려졌다 구조된 한 스코틀랜드 해적의 실화를 자료 삼아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이렇게 탄생한 소설이 ‘로빈슨 크루소’다. 디포는 항상 출세의 지름길만 찾았고 남을 속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고 믿었다. 전형적인 사기꾼 기질을 가진 인간이었다. 한편으로 자신의 부정직했던 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측면도 있었다. 디포의 이런 요소가 위대한 소설가의 자양분이 되었다. ‘로빈슨 크루소’는 생전에 그가 유일하게 거둔 진정한 성공이었다. 그는 글쓰기 능력을 정직하게 활용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정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디포의 삶에서는 범죄와 창의성, 폭력과 지성, 기회주의와 고결성이라는 상반된 개념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그의 개인적 도덕성은 죽었다. 그러나 디포가 남긴 소설은 유럽 문화를 바꾸는 일대 혁명을 촉발시켰다. 그의 소설은 유럽 각국의 해상 진출을 부추기며 유럽의 성공을 이끄는 촉매제가 된다. 

고대 로마제국 시대 대학살을 자행한 네로의 이미지.
베토벤 역시 천재성과 함께 독선, 아집에 사로잡힌 유형의 인물이었다. 베토벤은 기분을 상하게 한 웨이터에게 수프 접시를 집어던졌다. 독선가의 전형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그는 폭력 대신 오랜 규율 생활로 자신의 에너지가 흘러갈 방향을 음악 쪽으로 돌려 천재적인 음악가가 되었다.

사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분할 뇌 환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가혹하고 효율을 지향하는 인간들은 모두 좌뇌형 인간이었다. 좌뇌는 목적 달성 외에는 어떠한 가치도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우뇌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주변 지형을 살피며 그 다음에 어디로 향할지 결정하도록 해준다. 좌뇌는 앞으로만 전진하려는 강박증에 빠져 방향을 바꿀 능력을 쉽게 잃어버리지만 우뇌는 그 반대 성향을 보인다. 좌뇌형 천재에게는 두 가지 결말밖에 없다. 점진적인 자기파괴 아니면 점진적인 에너지 소모다. 저자는 “이 모든 점을 놓고 볼 때 범죄는 인간 진화의 불행한 노폐물”이라고 분석한다.

인간은 지능 덕분에 편안함, 안정, 쾌락을 얻는 방법을 계산할 수 있다. 이 능력은 동시에 인간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만들기도 한다. 원하는 것을 얻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가서 낚아채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독선가는 분노를 폭력으로 분출하면서 에너지를 모두 낭비한다. 그리하여 느리지만 확실히 감정적 요실금이라 할 수 있는 자기침식의 과정에 빠져들어, 그의 내면은 늪이나 오수처리장처럼 변한다. 이것이 알렉산더 대왕에서 스탈린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폭력적인 사람들 대부분이 결국 정신병자로 생을 마감한 이유다.

인류 역사는 인간끼리 살상하는 범죄의 역사였다. 무자비하고 머리 좋은 인간은 결국 실패하고 만다. 기본적으로 범죄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몰래 훔치거나 강제로 빼앗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매듭을 풀기가 어려울 때 그가 느끼는 첫 충동은 칼을 꺼내 끊어버리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이 방법은 대개 성공한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일은 꼬이기 시작한다. 히틀러의 제3제국, 소비에트연방은 결국에는 똑같은 이유로 대량살상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저자는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인류 범죄사를 써내려가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는 “물리적 욕망 성취에 탐닉하는 좌뇌형의 한계를 떨쳐내고 내면의 평화에 이르고자 하는 인류의 종교적 열정에 그나마 희망을 걸고 있다”며 종교에 기대를 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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