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해 고객 차 운전한 대리기사… 알고보니 '그냥 취객'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4차선 도로. 1차로를 달리던 한 흰색 소렌토 차량이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맞은편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4.5톤 트럭에 달려들었다.

소렌토 운전자는 인천에 거주하는 이모(38)씨. 그는 사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 자신을 대리운전 기사라고 소개했다. 이씨는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172%의 만취 상태였다. 대리운전기사가 음주 상태로 고객의 차를 몰다 사고를 냈다는 것이다.

당시 소렌토엔 대리운전기사를 부른 소렌토 차주 M(37)씨가 탑승해 있었다. 이 사고로 M씨의 소렌토 차량과 충돌 피해를 입은 Y(41)씨 소유 트럭의 앞범퍼가 파손됐다.

그런데 경찰서로 조사를 받으러 간 이씨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출동 경찰관에게 자신을 대리운전기사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자신은 대리운전기사가 아니라 단순히 술을 마신 취객이라고 실토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이씨는 범행 직전 서울 영등포구청 인근 먹자골목에서 회식을 마친 후 귀가하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비가 오는데다 만취상태여서 쉽게 택시를 잡을 수 없었다.

이씨는 결국 택시 잡기를 포기하고 인근 상가 처마 밑으로 들어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담배를 피우는 이씨 곁으로 한 남성이 다가와 함께 담배를 피웠다. 소렌토 차주 M씨였다.

M씨 역시 같은 날 먹자골목에서 술을 마신 상태였다. M씨는 이후 자가용으로 귀가하기 위해 대리운전기사를 호출했지만, 호출을 받은 대리운전기사가 쉽게 M씨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같은 처마 밑에서 처음 만나 몇 마디의 담소를 나누던 이들은 이후 이씨의 제안으로 황당한 음주운전을 하게 됐다.

이씨가 "대리기사가 찾기 쉽도록 대로변으로 나가자. 나도 큰길로 나가면 택시를 잡기 수월할 것"이라고 M씨를 설득한 것이다. 취기가 오른 상황에서 이씨의 제안을 솔깃하게 받아들인 M씨는 자신의 소렌토 차량 운전대를 만취 상태의 이씨에게 맡겼다.

이씨는 그렇게 M씨의 차를 몰고 300m가량을 이동하다 결국 중앙선을 침범, 신호 대기 중이던 트럭을 들이받았다. 이후 이씨는 경찰이 출동하자 M씨에게 자신을 대리운전기사라고 진술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두 사람은 모두 대화 내용만 겨우 기억할 정도의 만취 상태였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이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 과정에서 소렌토 차주 M씨는 이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자술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