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의 심장인 제조업이 심하게 덜컹거리고 있다. 지난해 제조업 부문 매출이 건국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했다는 통계가 최근 나왔다. 제조업의 추세 성장률이 1980년대 11.8%에서 최근 5.4%로 반토막이 났다는 분석도 있다. 추세성장률은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중장기 성장 추세를 말한다.
물론 9월 산업생산이 54개월만에 가장 큰 폭인 2.4% 증가해 경기 회복세가 강해졌다는 희망적인 통계도 나왔다. 하지만 아직 현장의 체감 온도는 싸늘한 편이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최근 언급한 것처럼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기의 위축은 "경기 순환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저성장의 문제"라는 인식이 저변에 깔렸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자동차, 전자, 철강, 건설 등 주력 산업에서 중국 등 신흥국의 강력한 추격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엔지니어링 등 고부가치 분야에서는 선진국과 격차가 상당해 성장세가 한계에 봉착했다.
여기에 저유가 기조 등 글로벌 악재가 경제계 전반을 먹구름처럼 뒤덮으면서 제조업의 활력을 빼앗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저성장 추세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구조조정과 혁신을 통해 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KDB 산업은행은 장기간 보유한 비금융회사 지분을 대거 매각하기로 하는 등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특히 천문학적인 규모의 적자를 기록한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해양플랜트 악재가 이어지면서 올해 국내 대형 조선 3사는 사상 처음으로 모두 조 단위의 적자를 낼 전망이다. 3사의 올해 영업 손실을 합치면 8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경영 위기에 처한 대우조선해양의 정상화를 위해 4조2000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하는 채권단은 단계적으로 인력과 조직을 축소하는 구조조정을 진행할 계획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민영화로 알려졌다. 대우조선의 대주주는 산업은행이다. 다른 대형 조선사도 내년부터 인력과 조직, 수주를 대거 축소한다. 중소 조선업체는 옥석을 가려 통폐합하는 절차를 밟는다. 최대 1만여명이 2~3년 내에 감축될 전망이다.
해운업계도 구조조정 대상으로 알려졌다. 경기불황과 선박운임의 비정상적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업계 2위인 현대상선은 부채규모가 6조원대에 이른다. 2011년 3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시작으로 ▲2012년 5000억원대 ▲2013년 3000억원대 ▲지난해 2000억원대의 적자를 냈다.
석유화학업계도 재편 과정을 겪고 있다. 삼성이 두 번의 빅딜을 통해 석유화학 계열사들을 각각 한화그룹과 롯데그룹에 넘기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는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인해 실적 부진에 빠져 있다. 민간협의체를 가동하는 등 자체 구조조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철강업계는 이미 작년 말부터 인수 합병 등을 통해 체질 개선을 펼치고 있다. ▲세아베스틸의 포스코특수강 인수 ▲동국제강의 유니온스틸 흡수 합병 ▲비리 의혹으로 홍역을 치른 포스코의 경영 혁신 등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저유가와 제품 단가 하락으로 최근 부진이 깊어지고 있어 역시 부실 사업 정리 등 추가 구조 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해외 플랜트 부실에 시달리는 대형 건설사도 경쟁력 강화 방안을 도입해야 할 형편이다.
정부는 업계가 자율적으로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나갈 방침이다. 선제적 사업재편을 돕는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 처리에 박차를 가하는 등 제도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최근 범정부 협의체를 만들었다.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기획재정부, 산업부, 금융감독원 등 관계기관들이 참여했다. 기간산업과 대기업그룹에 대한 채권은행의 구조조정 작업을 돕는다. 협의체에서는 국내·외 산업동향 및 산업·기업에 대한 정보공유·분석, 기업부채의 국내 주요산업 영향과 파급효과 분석을 진행한다. 기간산업 등의 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방향 등도 논의한다.
협의체에서 처리방향이 정해지면 채권단은 여신회수 또는 추가적인 지원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돈줄을 쥐고 압박해 나간다는 것이다.
한편, 1960년 1년 통틀어 3280만달러에 불과했던 우리나라의 수출은 지난해 5727억달러로 성장했다. 55년간 무려 1만7400배나 뛰었다. 지난 2011년에는 세계 9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했다. 수출이 늘어나면서 ‘경제의 주름살’도 펴졌다. 매일 끼니를 걱정하던 우리 국민은 이제 세계 경제의 '큰 손'이 됐다. 수출은 우리나라 경제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던 셈이다.
최근 수출 강국인 한국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올해 들어 매달 수출이 전년 대비 감소세를 지속할 정도로 부진이 심각하다. 10월 수출액은 434억7000만달러로 작년 같은 달보다 무려 15.8% 줄어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인 2009년 8월(-20.9%) 이후 6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한국 경제의 양대 축 중 하나인 내수는 조금씩 살아나고 있지만, 수출은 오히려 불황이 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 공개된 전분기 대비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2%로 5년여 만에 가장 높았다. 하지만 수출이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았다. 국내총생산 성장률에서 내수 기여도는 1.9%포인트 올랐지만, 순수출 부문은 0.7%포인트 내려앉았다. 10월 수출 통계를 부문별로 살펴봐도 휴대전화 분야를 빼면 주력 품목인 자동차·철강·조선 등이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저유가와 시설 보수의 영향으로 석유제품·석유화학 분야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3억달러 줄었다. 선박도 해양플랜트 수출을 한 건도 기록하지 못하면서 29억달러나 감소했다.
물론 수출 부진을 겪는 것은 비단 국내뿐만이 아니다. 저유가와 세계 경기 둔화 등의 영향으로 전세계 교역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국 등 경쟁국에 밀려 주력 수출 품목의 수출이 더욱 심각하게 줄어드는 상태다. 이 때문에 나중에 세계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우리나라 수출이 예전 궤도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10대 산업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신성장 동력 발굴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것이다. 2000년 이후 10대 산업 구성을 살펴봐도 ▲IT ▲수송기계 ▲기계 ▲철강제품 ▲화학 등의 산업들이 주류를 이루며 큰 변화가 없다. 30대 수출품목의 경우도 2010년 이후 단 3개 품목(인쇄회로·원동기·철강관)만 새로 편입됐을 뿐 나머지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이처럼 특정 산업군에 의존도가 높으면 이들 산업이 부진할 경우 위기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심해지는 점도 문제다. 이들 G2가 우리나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0년에는 30%대 초반이었지만 올해는 39%에 달한다. 여러 곳에서 수출 시장을 개척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갈수록 미국과 중국의 영향권에 휩쓸려 들어가는 형국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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