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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하며 '니즈' '원츠' 개념 이해 유도… 똑똑한 소비 도와

입력 : 2015-12-02 18:43:49 수정 : 2015-12-02 22: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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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금융교육 현장을 가다] ③ 11세부터 금융교육 의무화한 英
옳다 그르다 가치주입식 방법 대신 충분히 생각하고 의견 나눌 시간 줘
칠판에 걸린 스크린에 화려한 청바지 사진이 떴다. 미국 여가수 비욘세가 10만파운드(1억8000만원)가량 주고 산 청바지란다. 20대 젊은 교사 토페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만 열한 살 초롱초롱 눈망울들이 반짝거렸다. “돈이 그만큼 있다면 나도 사겠어요.”, “그래도 너무 비싸요. 미친 짓이에요.”…. 여학생들은 거리낌없이 자기 생각을 쏟아냈다. 빠른 템포에 추임새를 넣듯 때때로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달 24일 오전 영국 런던 북부의 엘리자벳 가렛 앤더슨 스쿨. 중등과정인 7학년 여학생 3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금융교육은 진지하면서도 유쾌했다. 토페 교사는 시종 웃음 띤 얼굴로 학생들을 사고와 토론의 장으로 이끌었고 학생들은 쉴 새 없이 손을 들며 호응했다. 교사는 이게 옳다, 저게 그르다 식의 ‘가치 주입’을 삼갔다. 섣불리 결론을 꺼내지도 않았다. 충분히 생각하고 토론할 시간을 줬고 학생들은 이 과정을 통해 스스로 돈을 쓰는 방법, 돈을 관리하는 지혜를 하나하나 깨달아가고 있었다. 

지난달 24일 영국 런던 북부의 엘리자벳 가렛 앤더슨 스쿨에서 7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금융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MyBnk 소속 강사 토페는 학생들을 토론의 장으로 유도했고,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손을 들며 호응했다.
교사 토페는 그 길목에서 충실한 안내자였다. 학생들의 릴레이 답변 끝에 그가 말했다. “돈을 쓰는 것은 그의 선택이다. 비욘세가 청바지를 사고 딸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돈이 남아 있느냐 없느냐도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다.” 토페는 “돈이 많건 적건 돈 관리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라는 합리적 결론을 비로소 이끌어냈다. 이 금융교육은 민간 비영리단체인 MyBnk의 프로그램이고 토페는 이 단체 소속의 강사다. 영국에서 금융교육은 만 11세부터 16세까지 필수과정이다. 2007년 설립된 MyBnk가 혁신적 프로그램으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11∼25세… 돈 관리에서 자립까지

MyBnk의 ‘돈 쓰는 방법론’에 등장하는 기본 개념은 니즈(Needs)와 원츠(Wants)의 차이다. 단순 번역하면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의 차이쯤 되겠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과 ‘없어도 살 수 있는 것’으로 극명히 갈린다. 비욘세의 사례에서 보면 ‘딸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돈’이 바로 니즈에 해당한다. 니즈와 원츠를 구분해 돈 사용처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토페는 숱한 사례와 질문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 이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여러분은 100파운드(18만원가량)가 생기면 무얼 할 것인가?” 토페의 질문에 답변이 이어졌다. “멋진 옷을 살 거예요.”, “뮤지컬을 보러 갈 거예요.”…. 니즈보다 원츠에 해당하는 답변이 주류였다. 토페가 다시 물었다. “100만파운드(18억원가량)가 생긴다면?” 답변이 달라졌다. “따뜻한 나라에 집을 짓겠어요.”, “반은 엄마를 주고 나머지는 나를 위해 쓰겠어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고 나머지로 좋은 옷, 차, 집을 사겠어요.”, “대학 학비와 결혼자금으로 저축해두겠어요.”…. 단위가 커지자 구체적·장기적 계획이 쏟아졌다. 토페가 다시 물었다. “왜 큰 돈에만 계획을 세우는가?” 이에 한 학생이 “100파운드는 너무 작아서 쇼핑할 돈밖에 안 된다”고 답하자 이번엔 토페가 반론을 폈다. “꼭 그렇지는 않아요. 100파운드로 흰 티셔츠를 사서 원하는 디자인으로 프린트해 온라인 판매하고 그 돈으로 다시 더 많은 티셔츠를 사서 파는 식으로 사업을 키워 큰 돈을 번 친구를 알고 있어요.” 토페는 “적은 돈부터 시작할 수 있다. 100파운드로도 얼마든지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니즈(없이는 살 수 없는 것)와 원츠(없어도 살 수 있는 것)를 구분해 돈 사용처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MyBnk 금융교육의 핵심 개념이다. 사용처별로 니즈와 원츠를 배열한 스티커판을 완성한 학생이 카메라 앞에서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린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토페는 “원츠가 결코 나쁜 게 아니지만 니즈를 먼저 돌보고 원츠를 해결하는 것이 순서”라는 설명과 함께 휴일, 여행, 전화기, 액세서리, 새옷, 학용품, 비디오게임, 인터넷, 저축 등의 스티커를 나눠주고 니즈와 원츠로 우선순위를 배열해보라고 주문했다. 90분에 걸친 수업은 이런 식이었다. 앤더슨 스쿨 담임 교사 줄리엣 헨리(45)는 “4년 전부터 MyBnk 프로그램을 교재로 썼으며 지난해부터 학년별로 1년에 한 번 워크숍을 하고 있는데 교육받은 학생들을 보면 돈 사용과 관리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알고 있더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이 아이들만 할 때는 돈에 대한 그런 개념이 전혀 없었다.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강의가 끝난 뒤 학생 안젤리나는 “돈 관리의 필요성을 확실히 알게 됐고 이제 부모를 떠나 독립했을 때 충격이 훨씬 덜하고 준비된 독립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MyBnk의 금융교육 프로그램은 연령대별로 차별화되어 있는데 16세 이상은 창업을 위한 돈 관리 방법 등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식이다.

◆“개인의 합리적 개념이 금융위기 방지”

돈 관리에 대한 개개인의 정확한 개념 정립은 금융위기도 막을 수 있을까. MyBnk의 프로그램을 포함해 영국의 많은 금융교육은 2008년 금융위기의 반성에서 비롯되었고, 그래서 재발 방지의 목적과 기대를 품고 있다. MyBnk의 또 다른 강사 조니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이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해주었다는 비난과 반성이 있었고 또한 많은 이들이 금융상품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없었던 점도 간과할 수 없다”며 “금융교육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MyBnk가 “직불카드는 ‘내가 번 내돈’, 신용카드는 ‘갚아야 할 은행돈’”이라고 명확히 개념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이 역시 니즈, 원츠와 마찬가지로 “신용카드가 나쁜 건 아니지만 사용의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란 개념을 분명히 해 분수 넘치는 사용을 막자는 취지다.

가이 릭든 MyBnk 최고경영자는 “개인의 금융지식, 책임감을 높여서 쓸데없는 부채를 안고 있지 않도록 하는 측면에서, 또 금융상품의 투명성을 높이고 정부 정책입안에 참여함으로써 금융교육 프로그램이 위기 방지에 기여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2007년 창립된 MyBnk는 교육대상으로 삼고 있는 500만 젊은이들 중 11월 현재 13만5000명을 교육시켰다. 릭든은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런던=글·사진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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