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지우(32)의 뺨에 눈물이 어렸다. 3시간 가까이 달려온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막을 내리려는 참이다. 스칼렛 오하라로 분한 김지우가 원작 영화의 명대사를 외쳤다. 감동에 잠긴 객석이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곧이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스칼렛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소화한 김지우는 커튼콜에서 여운에 잠긴 웃음으로 화답했다. 결혼과 딸 루아 출산 이후 2년 만에 선 무대였다. 최근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만난 김지우는 “2년 만의 컴백이고, 스칼렛이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역이라 잘할 수 있을까 불안했다”며 미소지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은 김지우는 “엄마들이 보통 그렇듯, 저도 누구 엄마로 불리기보다 내 이름 김지우로 불리길 원한다”며 “스칼렛 역시 그런 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저와 참 다르면서도 비슷한 여성”이라고 말했다. 미미엔터테인먼트 제공 |
‘바람과…’는 그에게 각별한 작품이다. 지난해 12월 첫딸을 낳고 1년간 쉬려던 계획을 이 작품 때문에 접었다. 10월부터 작품 연습에 들어갔다. ‘이렇게 빨리 복귀해도 괜찮을까’ 주저했다. 남편인 셰프 레이먼 킴이 오히려 그를 부추겼다. ‘스칼렛인데 후회 안 하겠어’라고 했다. 원작 영화의 팬인 시어머니도 그를 응원했다. 김지우는 “딸에게 멋있는 여자가 되고 싶기에, 스칼렛이라는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고 했다. 직접 만난 그에게선 갓 몸을 추스른 ‘애엄마’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살 빼느라고 죽는 줄 알았다”며 손을 내저었다.
“(출산 후 복귀한 연예인들을 보며) 저도 ‘어떻게 저렇게 빼서 나오지’ 했어요. 그런데 퍼져 있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운동하면서 거의 3개월 만에 몸을 만들었어요.”
그에게도 육아는 쉽지 않았다. ‘여배우는 도우미 고용해서 쉽게 육아할 것 같다’는 세간의 선입견을 전하자 그는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라”며 “아이 옆에서 자다가도 ‘응’ 소리만 나도 깨고, 유아식은 다 직접 만들고 요즘도 애가 걱정돼 하루에 몇번씩 전화한다”고 했다. 육아 중 겪는 고립감, 복귀에 대한 불안은 남편 덕에 이겨냈다.
“방송과 영화를 할 때는 ‘다음 작품이 안 잡히면 어쩌지’ 하며 많이 불안해했어요. 공연계로 오면서 좀 덜해졌어요. ‘이번 오디션 떨어지면 더 연습해서 또 하지’ 이랬죠. 육아 중에도 불안했죠. 옆에서 남편이 ‘내 것이면 꼭 기회가 온다. 조급해하면 오던 기회도 달아난다’고 위로해 줬어요. 하루는 친구들이 ‘내 영화 시사회 보러 와, 이번 드라마 모니터해 줘’ 하는데 내가 도대체 집에서 왜 이러고 있지 싶은 거예요. 나도 일하고 싶은데. 그 순간 남편과 아기를 보며 ‘나는 이걸로 행복해. 좋은 기회가 오겠지’ 하며 자연스럽게 넘어갔어요.”
아이를 낳은 후 그의 목표는 ‘딸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엄마’로 바뀌었다. 교복 광고로 데뷔했던 17살 소녀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는 “스칼렛의 철없는 어린 시절을 보면 내가 최고인 줄 알았던 10대의 저와 비슷하다”며 “연예계에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뮤지컬 무대에서 일한 지 10년째이지만, 방송의 영향력이 크다 보니 대중에게 그는 ‘TV 스타’ 이미지가 강하다. 의외로 그는 음악과 인연이 깊다. 고교 시절 첼로를 전공했고 외삼촌은 그룹 송골매의 베이시스트, 아버지는 취미로 음반을 모으고 색소폰을 연주했다. “고교 3학년 때 연극영화과로 가려 하자 엄마가 너무 화가 나서 제 첼로를 집어던졌다”고 할 만큼 연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뮤지컬은 2005년 ‘사랑은 비를 타고’로 시작했다. 이후 ‘렌트’ ‘닥터 지바고’ ‘아가씨와 건달들’ 등으로 꾸준히 경력을 쌓아왔다. 그는 “연예인이니 그냥 (주연이) 됐겠지 하는 오해가 아쉽다”며 “연예인 인지도로 역할을 맡는 경우는 소수이고 저도 이번 작품 전까지 매번 오디션을 봤다”고 말했다. 방송활동으로 인지도를 쌓은 만큼 필수적으로 가창력에 대한 판단 유예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무대에서 그의 노래는 깔끔하게 제 몫을 한다. 그러나 관객을 뒤흔드는 디바는 아니다. 노래에 대해 그는 “(옥)주현이나 바다와 저를 비교하면 안 된다”며 “저는 노래로 시작한 사람도 아니고 이들을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옥주현은 그렇게 잘하는데도 끊임없이 연습해요. 누구보다 먼저 공연장에 와서 목을 풀어요. 거기에 비하면 저는 정말 아주 다리 짧은 뱁새에요. 이들을 따라가려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해야 해요. 저보다 노래 잘하는 가수 지망생도 많아요. 그럼에도 제가 계속 일할 수 있는 건 무대에 열정이 있고, 그 역을 열심히 파고들리라 믿어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전 역할의 배경과 주변지식을 정말 열심히 공부해요. 한 가지 약속할 수 있는 건, 제가 지금도 이 자리에서 안주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에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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