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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닌 사람을 향해… 기록도 명예도 없는 목숨 건 여정

입력 : 2015-12-09 21:32:48 수정 : 2015-12-10 14: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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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허억··· 헉··· 헉··· 헉.”

다리가 풀리고 숨이 턱끝에 찬, 설산을 힘겹게 기어오르는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영화는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신의 영역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이석훈 감독의 신작 ‘히말라야’의 오프닝 장면이다.

‘히말라야’는 등반사고로 세상을 떠난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엄홍길 대장과 휴먼원정대가 목숨을 건 77일간의 도전에 나선 실화를 담아낸 감동적 영화다.
히말라야는 8848m의 에베레스트 등 8000m 봉우리 14개가 모여 있는 산맥으로 ‘세계의 지붕’이라 불린다. 1985년 히말라야에 처음 오른 엄홍길 대장은 이후 22년 동안 38번의 도전을 감행한다.

영화는 히말라야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이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나는 엄홍길 대장과 휴먼원정대의 가슴 뜨거운 이야기를 담아낸다. 산악 역사상 최초로 정상 등정이 아닌 사람을 향한 등반에 나선 이들은 77일간의 사투 끝에 눈 속에 누워 있는 동료와 재회한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저마다 각박한 삶을 살아내고 있지만 친구나 동료에 대한 감정을 돌아보고, 내게 그러한 친구가 있는지 내가 그러한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접어둔 채 잊고 살았던 인간에 대한 예의와 의리, 우정의 가치를 일깨운다.

우리 영화로 만년설이 뒤덮인 경외스러운 산을 마음껏 보기는 처음이다.

엄홍길 대장(황정민)과 박무택 대원(정우)이 빙벽에 붙어서 밤새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여명을 맞이하는 대목에서는 마치 디스커버리 채널을 보는 것 같은 황홀한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데 어떡하니?”

엄 대장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흘러나올 때, 이미 베이스 캠프에 가 있던 관객들은 그곳의 대원들과 함께 ‘등정의 기쁨’을 공유하게 된다.

영화 속 무택 역의 실제인물은 엄 대장과 칸첸중가, K2, 시샤팡마, 에베레스트 등 히말라야 4개좌를 함께 올랐던 인물이다.

화면 곳곳에서 산 사나이들의 의리가 진하게 묻어난다.

사나워진 날씨에 해도 떨어져 등반 중이던 어느 팀도 조난당한 박무택 대원을 구조하러 나서지 못한다. 하지만 정상등정캠프에 남아 있던 박정복 대원(김인권)은 홀로 영하 40도의 암흑 속에서 가장 험한 데스존을 통과해 8750m에 이르러 쓰러져 있던 박무택 대원을 찾아낸다. 그는 동료가 외롭지 않도록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곁을 지킨 뒤 하산하다 실종되고 만다. 가장 위대한 산행이자 가장 외로운 산행이었다. 산 사나이들은 그렇게 산이 된다.

눈물샘을 터뜨리는 장면들도 많다. 엄 대장이 다시 만난 박무택 대원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너무 딱딱해, 너무 딱딱해”라고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옆좌석 관객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한껏 목놓아 울어도 좋다.

기억하고픈 명대사들도 영화의 재미를 배가한다. “산에서는 오직 제 자신만 느낄 수 있습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이 나옵니다. 가면이 벗겨져요.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정상이요? 운 좋게 산이 허락해 줘서 잠시 머무는 거죠.” “등산이란 길이 끊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왜 산에 가냐구?··· 담배 같아. 그 맛을 알면 끊어도 끊는 게 아니고 참는 거니깐.” “사람이 없으면··· 산이 무슨 의미가 있어?”

거듭된 부상과 수술로 한쪽 다리가 짧아져 더 이상의 등반은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은 엄 대장에게 아내(유선)가 말한다. “이제 아빠 노릇, 남편 노릇··· 그게 산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놀이동산에도 좀 가자구요.”

망가진 몸으로도 2007년 세계 최초로 16좌 완등기록을 세운 엄 대장의 독백은 마음을 홀린다. “정복이가 내 허파가 되어 주었고, 무택이가 내 다리가 되어 주었다고 믿는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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