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
공존과 연대로 더불어 숲 만들자”
신영복 글 그림/돌베개/1만6000원 |
성공회대 신영복 석좌교수의 저서 ‘더불어숲’ 개정판이 나왔다. 1998년 처음 출간된 지 17년 만이다. 개정판에는 더욱 성숙해진 신 교수의 인생 성찰과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20년간 무기수로 복역하던 중 틈틈이 쓴 글들이 더욱 힘을 발하는 것 같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을’의 비애, 헬조선, 5포 세대, 각자도생 등의 유행어들이 난무한다. 사회적 격차가 심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첨예한 대결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대부분 ‘갑의 횡포’로 발생한 문제들이다. 신 교수는 이런 사회 모순들을 촘촘히 살피면서 ‘공존과 연대, 그리고 새로운 인간주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고 말입니다. 나무들은 모여 우람한 역사의 숲을 만듭니다.” 이 부드러운 표현에는 오만한 강자의 지배 논리에 맞서는 겸손과 공존의 원리가 배어 있다. 함께 하면서 타인을 존중하고 연대하는 ‘관계론’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신 교수의 끊임없는 성찰과 모색은 세계 여행을 통해 더욱 업그레이드됐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1997년 아프리카 여행 중 마사이족 어린이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돌베개 제공 |
“인류의 역사는 강자의 논리로 점철되었다. 그 바탕에는 수많은 약자의 생명과 피땀이 깔려 있다. 만리장성과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그것을 쌓기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한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강자의 논리에 불과하다. 그들이 발견한 땅은 결코 신대륙이 아니었다. 콜럼버스 이후 코르테스로 대표되는 유럽의 세력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가 무수한 살육을 자행했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다만 그것이 공격용이 아닌 방어 목적이었다는 데서 조금의 위안을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에 희생된 민초들의 수많은 주검은 여전히 장성의 아래에 묻혀 있다.”
신 교수가 여행에서 거듭 확인한 것은 자본주의의 오만과 무지, 그리고 반인간주의였다. 매일 충족하고도 모자라는 ‘무한한 허영의 욕망’이 지금의 자본주의다. 이 때문에 누구도 자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현대사회라면 과장인가. 선진 자본이 머리가 되고 중진 자본이 몸이 되고 그보다 못한 자본이 발이 되는 구조, 즉 현재진행형의 세계 체제와 불평등 분업의 이중구조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신 교수는 여행 말미에 결론을 얻는다. 이 카오스적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새로운 인간주의’를 제시한다. 새로운 인간주의는 자연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아니다. 궁핍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 쌓아 놓은 자본으로부터, 그리고 무한한 허영의 욕망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다. 금융위기와 전 지구적 테러 위협으로 현대 자본주의 체제는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다. 일방적인 신자유주의의 패권과 세계화라는 획일의 균열이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다.
신 교수는 “세계화는 인간의 논리가 아닌 자본의 논리”라면서 “더불어 손잡고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는 진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을 통해 신 교수는 패권주의와 물질주의 아래 함몰되어 온 희생의 의미와 가치를 섬세하게 되새긴다. 아울러 역사적 현장의 감회뿐만 아니라 다가올 미래에 대한 메시지도 제시하고 있다. 책에는 고통스러웠던 무기수 생활에서 터득한 나름의 지혜가 절절히 배어 있다. 4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읽기 지루하지는 않다.
신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복역 20년 20일 만인 1988년 출소해 이듬해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해 왔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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