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을 촬영할 때가 제일 어려웠어요. 엄홍길 대장과의 의리, 아내에 대한 그리움, 가족과 산악인 후배들에 대한 심정 등 한순간에 스쳐가는 모든 것들을 어떤 표정으로 담아내야 할지···. 사실 8000m 고지대에선 눈물이 곧장 얼어붙겠지만 관객과 공감하기 위해서 영화적 진정성을 택한 겁니다. 끝까지 쥐고 가야 할 감정선이라 여겨 눈물 흘리는 장면을 밀어붙인 거죠. 그러면서도 유연하게 느껴지길 바랐습니다. 객석의 관객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사진 = 영화 ‘히말라야’의 ‘박무택’ 역할로 감동을 전하는 정우는 “왜 힘든 영화에 출연했어요?”라고 묻는 것은 “왜 배우 하세요?”라고 질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꿈이었다”거나 “먹고살기 위해서” 등의 답을 기대하겠지만 자신도 마찬가지로 직업이 배우일 뿐이란다. 다만 조금 더 궁금해하는 직업이란 차이밖에 없다면서. 남정탁 기자>> |
영화는 에베레스트 등반 중 생을 마감한 산악인(박무택)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이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나는 엄홍길 대장과 휴먼원정대의 가슴 뜨거운 이야기를 히말라야 설산처럼 드넓게 펼쳐진 스크린 위에 재현해낸다.
“자칫 고인에 대한 실례가 될까봐 ‘죽는다’는 표현을 쓸 때는 항상 조심했어요. 시사회를 끝낸 뒤 간담회 자리에서도 다른 작품 때와는 달리 얌전하게 있었던 이유입니다.”
실제 박무택 대원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순수하게 산을 사랑했고, 꿈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죠. 동료들을 위해 늘 최선을 다하는···. 아마 산보다는 사람을 더 좋아했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모든 일에 긍정적인 분이었을 테고. 그래서 영화 속에 그려진 것보다 더 유쾌하고 밝은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를 나타내려 했어요.”
그는 박무택의 운명과 결말이 이미 정해진 영화라는 점을 감안해 전반부와 후반부의 차이가 더욱 두드러지도록 연기했다.
“나중에 감정의 폭을 더 넓히기 위해서 ···, 알고 있는데도 울컥하는 뭔가가 한꺼번에 확 밀려오도록···, 그리 표현했어요.”
고생한 영화라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는 그는 “실은 이토록 힘들게 찍을 줄 모르고 네팔 현지에 갔다”고 말한다. 촬영 분량의 많은 부분을 CG(컴퓨터그래픽)가 대체해 줄 것이라 ‘순진하게’ 믿으면서.
“두터운 옷이 그처럼 무거울 줄 짐작 못했고, 고산 등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장비들이 필요한지 전혀 몰랐던 거죠. 4000m 이상 지역에서 촬영하다 보니 특별한 교통편이 없어, 배우와 스태프 구분 없이 짐을 져 날랐어요. 압력차 때문에 마치 눈알이 튀어나와 코끝쯤 걸려 있는 듯한 느낌이었고요, 항상 충혈되어 있었죠. 게다가 불면증에 두통이 심해서 음식물을 섭취하는 데도 애를 먹었습니다.”
그 때문에 현장에서 막내 역할을 제대로 못했던 게 못내 아쉽단다.
“술도 못하는 데다 천천히 사람을 사귀는 스타일이라서···. 친분이 더 쌓였으면 장난도 많이 치고 애교도 떨었을 텐데요···. 그래도 대자연 속 촬영이라 항상 위험이 따르는데 큰 사고 없이 끝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하하하.”
영화를 좀 봤다는 사람은 ‘바람’(2009)에 출연했던 정우를 기억한다. 그를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TV드라마 ‘응답하라 1994’(2013)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도 앞서 무수한 작품들에 출연했던 ‘과거’가 있다.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배우가 아니라는 얘기다. ‘붉은 가족’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숙명’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짝패’ ‘사생결단’ ‘그때 그 사람들’ ‘바람난 가족’ ‘품행제로’ ‘라이터를 켜라’ 등의 영화와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 ‘칠성호’ ‘민들레 가족’ 등은 그가 어떤 모습으로 조·단역을 거치며 여기까지 걸어 왔는지를 말해준다.
올 초 개봉한 ‘쎄시봉’은 그를 국민순정남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사실 그는 악역도 많이 했다. 여전히 액션 캐스팅 제안도 끊이지 않는다.
“차기작이요? 가리는 거 없어요. 배우가 그러면 쓰나요?”
초심을 지켜가는 그가 미덥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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