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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세월이 가도 가슴 뛰는 것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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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2-25 20:47:05 수정 : 2015-12-25 20: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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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미술관서 만난 애니 거장의 숨결
‘두근두근' 열정의 삶이 살아나다
지난 주말 일본 미타카의 지브리 미술관에 다녀왔다. 연말 따뜻한 위로와 긍정의 기운을 얻기에 애니메이션 미술관만 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심정이었다. 지금 상영 중인 일본 애니메이션 ‘괴물의 아이’를 보면서 불현듯 많은 이미지를 통해 강력한 하나의 주제를 보여주는 작업물에 대한 새삼스러운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 터였다. 실사 못지않은 섬세한 배경 그림은 또 얼마나 촘촘하게 표현돼 있던지, 주제의 강력한 모티브가 되는 캐릭터, 배경, 스토리 등이 어떤 문학작품보다 정교한 이 애니메이션에 감동받았다.

사실 가볼 기회가 꽤 있었는데도 예약의 까다로움, 여행 일정의 변경 등으로 매번 포기했던 곳이 지브리 미술관이었다.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설계했다는 미술관 모토는 ‘우리 모두 길을 잃은 아이가 되자’라고 한다. 미술관 안에서는 적어도 길을 잃고 자유롭게 보이는 대로 체험하고 느끼면 된다는 의미렷다. 나는 많이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세히 보고 눈으로 담고 가슴에 새기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시인
미타카 역에서 지브리 미술관까지 걸어가는 동안,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장면이 떠올랐다. 작은 강을 낀 가로수 길은 그의 화면 속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정갈하고 아름다웠다. 미술관이 공원 안에 있으니 숲의 정령이 함께하는 듯한 기운을 불러일으켰다.

일정한 입장 시간에 예약 관람객만 받아들여 번잡함을 안기지 않는 배려가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오밀조밀한 짜임새의 전시실은 애니메이션 원리를 캐릭터를 통해 설명하거나 스케치부터 스토리보드 구성, 색상 입히는 작업을 일관되게 보여줌으로써 애니메이션의 이해를 돕고 있었다. 사실 나는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교양을 쌓으려고 간 것이 아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이디어, 작업방식 등이 몹시 궁금했다. 미술관에 그의 작업실이 재현돼 있다는 입소문을 들었던 터라 서둘러 그 방을 찾아갔다. 온갖 사랑스럽고 개성 있는 캐릭터가 탄생한 작업실에는 스케치용 연필부터 물감까지 각종 작업 도구가 잘 배치돼 있었다.

무엇보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미야자키 하야오가 스케치 작업을 하기 전 단계에 무수히 찍어놓은 실제 사진이었다. 애니메이션 배경과 캐릭터의 탄생은 실제 발로 뛴 동선을 통해 구체화된 것이었다. 다소 몽상적이고 만화적인 캐릭터에 인생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싣는 작업은 결국 현실세계의 관찰과 취재에서 나온 것이었다. 수없이 찍은 실사 사진, 현장 메모가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의 동력이었다.

그럼 그렇지, 관찰하지 않고 어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겠는가. 결국 생각하는 것을 구체적인 어떤 이미지와 이야기로 만들어내려면 현실적인 취재가 바탕이 되지 않고서야 그렇게 관객을 울고 웃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란 믿음을 기분 좋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일본 유명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일본 민담을 재료로 현대식으로 재구성한 흥미로운 상상력이 발현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자신은 작품을 쓸 때 하나의 이미지만을 갖고 쓴다고 했다. 그 이미지는 매우 강력한 것이라고.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열정적인 관객으로서 그 수많은 이미지의 향연인 애니메이션을 보며 가슴 두근거리는 한편 무라카미 하루키에 매료된 독자로서 강렬한 하나의 이미지에 가슴 데이기도 한다. ‘괴물의 아이’ 중 가장 인상 깊은 대사는 인간 아이를 키우는 괴물 구마테쓰가 무술을 가르치는 장면에서 외치는 말이었다. “가슴속의 검이 중요하다고, 가슴! 가슴속의 검을 찾아.”

연말에 다녀온 지브리 미술관에서 다시 한번 가슴 뛰는 삶을 생각한다. 현실세계에 발붙인 단단한 생활감각 속에서 가슴 뛰는 일은 조용히 찾아온다. 아직 살아 있음을 느낀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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