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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칼을 빼들었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입력 : 2015-12-30 05:00:00 수정 : 2015-12-30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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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IMF 경제위기를 앞둔 1996년 기업 부채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석유화학·자동차·반도체 등 중화학공업 부문의 차입을 통한 중복 투자가 확대되면서 설비투자의 효율성과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1996년 기업의 자산 대비 부채 정도를 나타내는 기업부채비율은 335.61%까지 치솟았고,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에는 424.64%까지 올라갔다. 1996년말 우리나라 대외채무는 1448억 달러로 1994년 말에 비해 640억 달러 늘었는데, 이 중 은행의 단기차입금 증가액이 절반을 차지했다. 1997년 한 해 동안 부도가 난 대기업 금융권 여신만 30조원을 훌쩍 넘어서면서 신용 경색과 금융시장 혼란은 한국을 금융위기로 몰아갔다. 올 상반기 말 기준 유가증권시장 상장 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123.08%로 일견 외환위기 때에 비해 한결 나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내를 살펴보면 이른바 '좀비기업'(빚 연명 한계기업)으로 인한 문제가 곪아 있다는 지적이다.

#. A은행과 6년째 거래중인 B사는 타 은행 차입금 대환과 시설자금 용도로 A은행에 25억원의 담보 대출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예전 같았다면 이 회사가 내 건 공장담보로 대출이 가능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A은행은 3년 연속 적자, 이자보상배율 1배 미만, 차입금의존도 55% 이상 등 열악한 재무상황을 이유로 대출 승인을 거부했다.

경기 침체의 늪에서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좀비기업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좀비기업 비중이 중소기업보다 3배 가량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기업 좀비기업 비중, 중소기업보다 3배 더 빠르게 증가

최근 한국금융연구원 이명활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기업부채 현황 및 기업구조조정에서의 시사점'에 따르면, 대기업 중 좀비기업 비중은 2009년 9.3%에서 지난해 14.8%로 5.5%p 늘었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 중 좀비기업 비중이 13.5%에서 15.3%로 1.8%p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대기업의 좀비기업 비중이 얼마나 빠르게 늘고 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좀비기업은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비율)이 3년 연속 100% 미만인 기업으로 매출은 발생했지만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내지 못하는 곳을 말한다.

여기에 중소기업 중 좀비기업의 부채비율은 8.0%p 하락했지만 대기업 좀비기업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기준 231.1%로 같은기간 14.8%p 상승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진 우리 경제 전반이 '시스템적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산업별로 보면 과거 우리경제 성장의 주축이 됐지만, 산업 구조의 변화로 경쟁력을 잃게 된 조선·운수·철강 등의 업종에서 좀비기업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조선업의 좀비기업 비중은 2009년 6.1%에서 2014년 18.2%로 12.1%p 상승했고, 운수업(13.3%→22.2%)은 8.9%p, 철강업(5.9%→12.8%)은 6.9%p 상승했다.

연관 업종 내에 좀비기업이 늘어날수록 정상기업의 투자나 고용 등에 부정적인 영향이 전이되고, 나아가 금융권 부실로 이어지면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수출 부진과 중국 등 신흥국의 기술 경쟁력 급부상, 미국의 금리인상 등 대외 악재도 좀비기업의 부실화를 더욱 위협하고 있다.

◆선제적인 기업 구조조정 필요

이명활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저성장 기조 하에 부실기업의 회생 가능성이 이전보다 낮아지고 있으며 대규모의 부실 누적이 예상되고 있다"면서 "어느 때보다 선제적인 기업 구조조정 체제의 정착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와 맞물려 늘어나고 있는 좀비기업이 '시한폭탄'처럼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더욱이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로 그나마 연명하던 좀비기업들의 부실화 위험이 더욱 커지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금융권 부실, 정상기업 성장 저해로 이어져

좀비기업의 부실화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만이 아니라 '금융권 부실→정상기업 성장 저해'로 이어지면서 우리 경제 전반의 시스템적 리스크로 번질 수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좀비기업 구조조정은 미룰 수 없는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못갚는 좀비기업은 전체 2만5450여개의 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2009년 12.8%(2698개)에서 지난해 15.2%(3295개)로 597개 늘었다.

좀비기업이 증가할수록 좀비기업이 금융권에서 빌려 쓴 부채도 동반 증가했다. 좀비기업의 부채 비율은 2009~2014년 213.6%에서 222.5%로 8.8%p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정상기업의 부채 비율이 95.1%에서 79.2%로 15.9%p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이러한 가운데 금리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더 늘게 되면, 금융권이 돈을 돌려받을 길은 더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부실기업, 정상기업의 성장에도 '찬물'

부실기업들은 정상기업의 성장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어 문제다. KDI(한국개발연구원)의 '부실기업 구조조정 지연의 부정적 파급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2010~2013년 중 산업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산업내 '부실기업'의 자산 비중이 10%p 증가하는 경우 정상기업의 투자율과 고용률이 각각 0.53%p, 0.18%p 가량 모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부실기업의 자산 비중이 10%p 줄어들면 정상기업의 고용을 11만명 안팎으로 증가시켰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좀비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연말까지 조선·철강·해운·석유화학·건설 등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 계열이 수술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그동안 기업 구조조정을 통한 부실기업 퇴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8년간 좀비기업을 겪은 적이 있는 만성적 좀비기업 수가 아직도 전체 좀비기업의 73.9%(2014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만큼 기업 구조조정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기업 회생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연명하기 보다는 좀비기업에 대한 선제적인 구조조정으로 부실기업을 정리해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이 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기업 구조조정은 추진 주체의 미비, 채권단 합의도출 어려움 등으로 원활히 작동되지 않았다"며 "선제적이고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창우 KDI 연구위원도 "금융당국은 지나치게 확대된 국책은행의 금융지원 규모를 축소시키고, 국책은행은 엄격한 기업실사를 통해 부실기업을 신속하게 법원의 회생정리 절차로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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