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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살 정년 부럽다고 하거든 ‘명퇴’ 두렵다고 전해라

입력 : 2015-12-31 18:32:17 수정 : 2016-04-13 17:5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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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은 피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이다. 평균 수명은 늘어나는데 저출산 기조가 계속되면서 ‘국가 노쇠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년 60세 시대를 맞은 근로현장은 여유와 온기가 느껴지기보다 삭막한 먹구름이 잔뜩 낀 모습이다. 오랜 경기 침체에 경제상황이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기업들이 ‘희망·명예퇴직’ 카드 등을 꺼내 근로자를 내보내고, 신규 채용도 주저하고 있어서다. 정부의 제도적 지원 방안 확대·구축 및 노사 간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년연장’이라더니 때 이른 ‘명퇴바람’

시중은행에서 입사 10년차 대리로 근무하는 강모(38)씨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청전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평소 깍듯이 모셔온 부장이 재취업 지원금까지 합쳐 2년치 급여를 받는 조건으로 퇴직을 권고한 것이다. 강씨가 머뭇거리자 부장은 “나가지 않으면 지방으로 대기발령이 날 것 같다”고 압박했다. 사흘간 휴가를 쓰고 돌아온 강씨는 결국 명퇴 신청서를 제출하고 현재는 구직 준비를 하고 있다.
 
정년연장에 인건비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앞다퉈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명퇴 바람’을 맞는 근로자의 연령대가 젊어지고 있다. 통계청의 지난 11월 취업자(재직자) 통계에서 20대는 7만9000명 늘어난 반면에 30대와 40대는 각각 5만명, 4000명 줄었다. 얼마 전에는 대기업인 두산인프라코어마저 갓 입사한 20대 직원에게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큰 논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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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도 할 말이 많다. 구조조정 외에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 기업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는 항변이다. 생명보험사에서 인사관리를 담당하는 A전무는 “정년이 늘어나는 근로자는 좋을지 몰라도 경영진은 ‘정년공포 시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며 “경기는 점점 나빠지는데 인건비는 고정돼 있어 사람을 줄이는 것 외에는 마땅한 답이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국내 기업 대부분은 정년 60세 시대 대비가 허술한 편이다. 지난해 말 대한상공회의소가 3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년 60세 시대 대비 현황’ 조사에서 절반 이상인 53.3%가 미흡하다고 답했다. ‘대비가 충분하다’는 기업은 24.3%에 그쳤고 ‘회사 특성상 별도 대비가 필요 없다’는 기업이 22.4%였다. 한국노총의 정문주 정책본부장은 “정년보장을 위한 해고기준 강화 조치 등 고용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법적 장치가 우선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령 근로자의 경험 인정하는 풍토 절실

수도권에서 중소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김모(60)씨는 요즘 공장을 둘러볼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현재 30명인 생산직 근로자 중 18명이 60대 이상인 데다가 최근 3년 동안 제대로 된 신입사원 하나 뽑지 못했다.

김씨는 “고령자가 신규 근로자에게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해야 하는데 중소기업은 젊은 인력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이라며 “외국인노동자 수급이 쉬운 지방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국민 1200명을 대상으로 한 2015년 보험소비자 설문조사에서 정년연장 시 60세까지 근무할 의향이 있다는 비율이 응답자의 81.4%로 나타났다. 다만 철저히 위계서열이 갖춰진 우리나라 기업문화에서 고령자가 갈 수 있는 마땅한 직무가 없다는 게 걸림돌이다.

특히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제도가 변하지 않는 한 고령 근로자는 젊은 세대의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천덕꾸러기’ 및 ‘타도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 전자분야 대기업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던 강모(52)씨는 최근 IT(정보기술) 분야 중견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씨는 지난해 자신의 2년 후배가 전무로 승진하면서부터 이직 자리를 알아봤다. 그는 “후배가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바뀌었다”며 “나 때문에 부서 전체의 활기가 떨어지고, 젊은 부장이 있는 부서에 비해 부원들의 실적 보고서도 인정을 받기 어려운 분위기여서 퇴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상임대표는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각종 연금상품이 늘어나고 있지만, 근로 현장에서는 ‘나이 든 사람은 나가라’는 조직문화가 만연하다”며 “정년연장으로 연금 적립 기회가 늘고, 고령자가 인정받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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