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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상수… 이제 제대로 작업할 나이지”

입력 : 2016-01-05 20:05:35 수정 : 2016-01-05 20: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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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청년 김병기 화백을 만나다
한국과 일본에서 반평생을 보내다 미국으로 건너가 반평생을 살았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 작업의 둥지를 트니 이제 상수(上壽·100세)가 됐다.

봄 전시를 앞두고 붓 놀림이 초조해졌다. 전시 날짜를 잡아 놓으면 왠지 그림이 잘 안 되는 시달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한국 최고령 현역작가 김병기 화백의 얘기다. 요즘도 서울 평창동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작업실을 거뜬히 오르내리고 사다리에 올라 붓질을 하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다.

사실 그를 지난 연말 만나려고 했으나 한 해의 끝자락을 홀로 보내고 싶다는 말에 4일 신년 인터뷰를 하게 됐다. 여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낭만적 젊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작업실에 들어서니 캔버스에선 선들이 춤을 추고 있다. 작업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북한산 봉우리들의 형상이 언뜻언뜻 드러나기도 한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 지점에서의 긴장감 같은 것이 캔버스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경계는 예술적 경지를 가리키는 의경(意境)이기도 하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땐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프랑스의 앵포르멜에 관심을 가지면서 형상이 없어지는 단계까지 갔었지. 그런데 미국에 가서는 그것을 계속할 수가 없었어. 왜냐하면 칸딘스키 같기도 하고 몬드리안 작품처럼 보이기도 하는 거야.”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서 모든 인간사를 풀어내고 있는 김병기 화백. 그는 요즘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 전시인 가나아트 전시(4월)를 앞두고 신작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화폭에 그어진 선들에서 북한산 풍경이 어른거린다.
그는 고심 끝에 자연에서 재료를 얻어야 한다는 통찰에 이르게 된다. 과학이나 학술은 어떤 사람이 해놓은 토대에 새것을 첨가하는 방식이라면 미술은 자연 자체에서 얻어진다는 확신을 하게 된다. “과학은 방법적인 것을 밟아서 다음 단계가 되는데 미술은 항상 자연에서 얻어야 하는 것 같아. 미술을 마치 과학의 진화처럼 생각하면 안 돼. 미술은 학문도 과학도 아니지. 미술은 진화하는 게 아니라 변화하는 거야.”

미술은 어떤 사람의 학설을 뒤집어엎는 방식으론 안 된다는 얘기다. 그가 미국생활에서 큰 맘 먹고 자연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 이유다. 지금까지 그 기조는 변함이 없다. “지금도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과학처럼 진화를 생각해. 서양에서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 많지. 그런데 미술은 학문도 과학도 아니고, 변하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모든 선이 사람으로 귀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 ‘모델’. 작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형상은 한국 여인네다.
그는 선들을 그어 놓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프로세스가 생각이 난다. 자연에서 추상과 구상의 의경을 거닐며 나름의 그림 이야기를 풀어간다.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마운틴 밑에 베벌리힐스가 있지. 그곳에서 동쪽으로 가면 천문대가 있어. 그 천문대 입구에 내가 살고 있었지. 건물 8층에서 풍경을 바라보고 그림을 많이 그렸어.”

그는 뉴욕에서 LA로 이주하면서 동양으로 가는 길의 절반은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리상. 그리고 느낌상 동양에 많이 가까워진 것 같았다. “한국에 있을 땐 서양 생각을 많이 했다면 서양에서는 오히려 동양 생각(내 자신)을 많이 했어. 그중에서도 선(線)이 중심 화두였지.”

김 화백에게 형태를 진전시키는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선이다. “동양 사람이 선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서양 사람은 면을 그리는 사람들이지. 대표적인 예가 4군자인 매란국죽 그림이야. 난초를 하나의 선으로 해석하고 있지. 이에 비해 서양인은 난초 면의 경계를 선이라고 하지. 사실 선은 추상이야. 동양 사람은 그 추상적인 선을 아무 의심 없이 그냥 선으로 해석해. 그런데 중국 사람, 한국 사람, 일본 사람도 선을 긋지만 한국 사람이 선을 제일 잘 그려. 왜냐하면 지형이 그래. 중국은 평야지대고, 일본은 인위적인 정원 같은 산지야. 이에 비해 한국의 지형은 늙은 바위 노암지대지. 오랜 비바람에 리듬이 강한 땅이 됐어. 한국은 그래서 리듬이 있는 나라야. 다른 나라에는 그런 리듬이 없어. 그래서 우리가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르는 민족이야. 그 리듬이 기가 막힌 선이 되면서 겸재가 나오고 추사가 나온 거야.”

그래서 그는 겸재와 추사의 선을 계승하고자 한다. 피카소도 울창한 숲을 산보한 자에겐 그 녹음(綠陰)이 그림에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환경도 그림에 작용한다는 얘기다. 

김 화백에겐 특별한 건강비결이 없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잔다.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지 않는다. 식사도 특별할 게 없다. 아침 식사는 수년째 토스트와 커피가 전부다.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거기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지. 보답이란 미지근한 삶이 아닌 적극적인 삶이지.”

그에게 적극적인 삶의 궁극적 종착역은 사랑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저 주사 맞는 것처럼 따끔한 것도 있겠지만 대단히 자연스러운 거야.”

김 화백은 낭만주의자이지만 미술작업 방식에선 아주 현실의식주의자다. 예를 들어 사회비판적 요소부터 고층 빌딩 사이의 풍경을 선으로 표현한 작품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낭만과 현실의 경계마저도 의경의 경지로 끌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낙관적 시각은 그 기저에 깔려 있다. “내가 북한산을 그리는 것은 북한산을 그리는 것이 아니야. 의경을 그리고 있는 거지.”

평양이 고향인 김 화백은 이중섭 화백과는 소학교 동창생이다. “중섭이하고는 소학교 6년 동안 같은 반이었어. 동경서 문화학원이라는 미술학교를 다녔는데 나보다 2년 밑으로 중섭이가 들어왔지. 김환기 화백은 일본 ‘아방가르드미술’에서 처음 만났지. 거기서 물밀듯이 들어오는 초현실주의 등 서구사조에 함께 푹 젖기도 했어.”

요즘 세계미술계가 동양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에 그는 격세지감을 느낀다. “중국이 오리지널한 요소의 발신지였다면 한국은 그 동양성을 가장 순결하게 유지한 나라야. 일본은 너무 양식화돼 버렸고. 한국 미술이 세계 미술의 핵이 될 수밖에 없지.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미학적 조명작업이 절실해.”그가 한·중·일 국제전시를 적극 주창하는 이유다. 100세야말로 이제 작업을 제대로 할 나이라고 말하는 김 화백의 표정에서 소년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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