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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번째 사형수' 된 임 병장… 한국의 사형제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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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2-20 13:58:48 수정 : 2016-02-21 10: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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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사형은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냉엄한 궁극의 형벌"
1997년 이후 집행 안해 사형수 10명은 자연사하거나 자살

 “범행 과정에서 평소 자신을 무시해 왔다는 후임병들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과 친하게 지냈던 후임병들에 대해서 소총을 발사하여 그들을 살해한 것입니다. 범행 시간이나 방법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소초원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많이 살해할 수 있는 순서, 방법 등을 계획한 다음 지능적이고 냉혹하게 그 계획에 따라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입니다.”

1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13명이 모두 참여한 전원합의체의 판시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었다. 2014년 6월 강원 고성 육군 22사단 일반전초(GOP)에서 수류탄과 소총으로 아군 병사 5명을 살해한 임모(24) 병장은 앞선 1·2심 군사재판 내내 “부대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한 분노로 인한 우발적 범행”이라며 정상참작을 호소했다. 하지만 다수 대법관은 임 병장과 평소 친하게 지낸 병사들이 살해된 점, 임 병장의 범행이 치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지능적이고 냉혹하게 이뤄진 점 등을 들어 배척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인 양승태 대법원장(왼쪽 2번째)가 19일 임 병장 사건 판결문을 읽고 있다. 왼쪽부터 이인복 대법관, 양 대법원장, 이상훈·박보영 대법관. 대법원 제공

상관살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임 병장 사건 상고심에서 대법관들이 9 대 4 의견으로 사형을 선고한 고등군사법원 원심을 확정하면서 대한민국에는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가 총 61명 있게 됐다. 4명은 임 병장 같은 현역 군인 신분이고 나머지 57명은 민간인이다. 우리나라가 1997년 12월 30일을 끝으로 사형 집행을 하고 있지 않음에도 사형 확정 판결이 계속 내려지는 이유는 뭘까. 사형수들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대법 “사형은 정당화될 수 있을 때에만 선고”

대법원은 이번에 임 병장에게 사형을 선고하며 사형 판결의 기준을 재차 천명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등 다수의견에 가담한 대법관 9명은 판결문에서 “사형은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냉엄한 궁극의 형벌로서 사법제도가 상정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사형 선고는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형벌의 목적에 비추어 누구라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양형의 조건이 되는 모든 사항을 엄격하고도 철저히 심리해 의문의 여지가 없도록 사형의 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그 사형의 선고가 허용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선언했다. 임 병장의 경우 비난 가능성이 높아 엄벌이 불가피하고, 사형 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는 것이 다수 대법관의 생각이다.

“살해된 피해자들은 만 19세 내지 23세의 젊은 나이입니다. 피고인은 소초원들의 괴롭힘과 따돌림이 이 사건의 핵심적인 원인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면서 억울함을 토로하는 등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운명의 탓으로 돌리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아무런 잘못 없이 잔혹하게 살해된 피해자들과 그 유족들이 입은 충격과 고통 그리고 슬픔을 헤아려 보면, 피고인에 대하여 형사적 비난 가능성을 경감하는 것은 책임주의와 정의 관념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GOP 총기 난사사건으로 사형이 확정된 임모 병장(가운데)이 2014년 7월 8일 사건 현장인 육군 22사단에서 범행 당시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모병제가 아닌 국민개병제와 징병제를 택한 대한민국에서 군인이, 전시도 아닌 평시에 동료 병사들에게 총부리를 돌린 행위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무거운 범죄라는 다수 대법관의 단호한 판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범죄를 사형이라는 법정최고형으로 다스리지 않는다면 국민개병제 국가 국민들의 법감정에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앞으로 군복무를 해야 할 젊은 남성과 그 부모들의 불안을 도저히 잠재울 수 없을 것이란 현실적 고려도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사형을 지지한 다수의견에 가담한 대법관 중에는 여성인 박보영·김소영 대법관도 있다. 두 대법관 모두 아들이 있으며 정상적으로 군복무를 했거나 입대를 앞둔 것으로 전해졌다.

◆1997년 이후 사형수 10명 ‘병사’ 또는 ‘자살’

사형수 가운데 임 병장 등 현역 군인 신분인 4명은 경기 이천 국군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민간인 57명은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 등 전국 5대 구치소가 분산해 수용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형수는 비록 형은 확정됐으나 집행이 이뤄질 때까지는 미결수로 분류된다. 따라서 의무적으로 노역 등을 해야 하는 기결수와 달리 대부분 독방에 기거하며 노역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도관 출신으로 처음 교정행정 총수에 오른 이순길 전 법무부 교정국장은 “사형수는 어차피 끝난 인생이라는 자포자기 심정이기 때문에 교도관도 통제하기 힘들다”며 “사형수 1명 지도하는 것이 일반 재소자 1000명보다 힘들다”고 말했다.

 이 전 국장에 따르면 집행 대기 중인 사형수가 심지어 다른 재소자를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새로운 살인사건 재판이 완료되는 2∼3년 동안은 생명을 더 연장할 수 있다는 계산 속에서 자행된 범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을 교수형에 처한 이후 약 20년 동안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감 중인 사형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질병 등으로 숨지는 일도 종종 생겨난다. 법무부에 따르면 ‘마지막’ 사형 집행이 있었던 1997년 이후로 2006년 1명, 2007명 2명, 2009년 4명, 2011년 1명, 2015년 2명 등 총 10명이 자살하거나 질병 등으로 사망했다.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간주하는 관행에 따라 한국도 국제사회에서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통한다. 어차피 집행하지 않을 사형제라면 아예 폐지해서 ‘실질적’이란 꼬리표를 떼어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2015년 11월 유엔 산하 자유권규약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사형 폐지를 권고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비록 한국을 지목하진 않았지만 “오심으로 무고한 사람이 사형에 처해질 우려가 있으니 사형을 없애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국은 1997년 이후 20년 가까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사회에서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통한다.


◆“오심 구제 불가능” VS “범죄예방 효과 입증돼”

실제 사형제 폐지론자들이 제시하는 가장 핵심적인 근거가 바로 오심 가능성이다. 사형 확정에 따라 집행까지 이뤄졌는데 훗날 그 판결이 오심으로 판명난다면 구제가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논리다. 실제로 2015년 12월 대법원 3부는 이른바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고 박노수(당시 39세) 교수와 고 김규남(당시 43세) 의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두 전직 교수는 1970년 대법원에서 함께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고, 유신 선포 이후인 1972년 사형이 집행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장덕천 변호사는 “생명권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사형이라는 형벌로 이를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은 논리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사형제의 범죄예방 효과가 높지 않아 폐지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유럽 간첩단 사건 재심에서 보듯 사형이 집행된 이후 오판을 시정할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인 만큼 사형제를 폐지하고 감형이 없는 종신형 등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국형사정책학회 고문인 숙명여대 이영란 명예교수는 “사형은 국가가 정한 불가피한 필요악으로서 오랜 역사만큼 필요성 내지 존재 이유가 인정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사형제는 잠재적 범죄자에게는 심리적 강제를, 잠재적 피해자에게는 심리적 안정을, 범죄 피해자에게는 심리적 보상을 각각 제공한다. 이 명예교수는 “만약 국회가 입법으로 사형제를 폐지한다면 월권 내지 권한남용 소지가 크다”는 입장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유인태 의원 등 여야 의원 171명은 공동으로 ‘사형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국회 법사위는 19대 국회 종료를 앞두고 겨우 법안 심의에 착수했으나 현 국회 임기 안에 처리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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