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11월 기준 미국 대학생 10명 중 1명이 학자금 대출을 90일 이상 갚지 못해 연체된 것으로 조사됐다는 에퀴팍스(Equifax) 사의 조사를 인용하며 “돈을 갚을 능력이 안 되는 저소득층 대학생들이 주로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학자금 대출 잔액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 1조2000억달러(한화 약 1484조원)에 달해 최근 10년 동안 3배 이상 증가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소비자 재정보호국’의 세스 프로트먼은 “대학생들의 학자금 대출 상환이 늦어지고 있는 현상은 지난 2008년 모기지 사태에 따른 금융 위기 사태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라며 “연체율이 증가할 경우 위기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대학생들이 학자금 대출을 통해 빚을 내고 있는 것은 ‘대학 학위’가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위한 하나의 필수조건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만성화된 ‘저임금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소득층이 경쟁적으로 대학 진학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아이비리그 등 명문 대학을 졸업한 대학생들과 달리 유명하지 않은 대학을 나온 경우 취업이 쉽지 않고, 오히려 연체금만 늘어나는 ‘빚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FT는 지적했다.
그래픽 아티스트를 하기 위해 웨스트우드 전문대학(collge)에 입학해 학자금 대출을 받았지만 현재 장식품을 팔고 있는 제니퍼는 “대출금을 갚기 위해 매달 버는 돈의 절반인 400~500달러를 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관계없는 공부를 위해 돈을 빌리고 갚는 데 대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의 이런 희망을 미끼로 영리만을 목적으로 한 ‘엉터리’ 대학이 우후죽순으로 늘면서 청년들이 입는 피해는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제 대학생 1만6000명이 다녔던 코린시안 대학교는 취업률을 부풀린 것이 포착돼 지난해 4월 폐쇄 조치됐다. 미국 졸업생 1만여명은 교육 당국에 대학교의 허위 광고에 속아 학자금을 갚을 수 없게 됐다며 빚을 면제해달라는 청원을 제기한 상태다. 하지만 현재 연방법은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하는 학생들이 개인 파산 신청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대선 경선에 나선 후보들도 앞 다퉈 대학생들의 학자금 대출 정책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1980년 이후 태어난 유권자들은 현재 학자금 대출 문제에 관한 공약을 두 번째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젊은 층으로부터 앞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월가의 경제인들로부터 세금을 부과해 매년 750억달러(한화 92조여원)을 걷어 학비가 무료인 공공 대학을 많이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샌더스 후보의 제안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면서 향후 10년 간 다양한 분야에 3500억달러(한화 433조여원)을 투입해 점진적으로 학비를 무료화하고, 이미 학자금 대출 부담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저리로 돈을 갚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반면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고 있진 않지만 정부가 학생들의 학자금 대출과 관련해 수익을 거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학생 투자 계획’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개인 투자자들이 특정 학생의 교육에 투자해 졸업 후 얻는 수익의 일부를 가져가는 다소 논쟁적인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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