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 지음/돌베개/2만원 |
“2016년 3월 2일 결국 테러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테러방지법의 핵심은 국정원장이 영장 없이 테러 위험인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 데 있다. 이번 사안을 두고 삼권분립이 무색해진 민주주의의 붕괴라는 여론의 비판이 들끓었다. 무엇보다 이번 법 제정 과정에서 사법부는 제 역할을 포기한 채 국가의 조력자임을 스스로 증명해낸 사건이기도 하다.”
저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서문 가운데 일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좀비와 비슷한 ‘법비’를 끌어낸다. 대한민국 ‘법비’들의 권력 투쟁사라 할 수 있다. ‘법비’란 무슨 말인가. 법을 자기 식으로 절대시하고 도구로 삼은 사람들이다. 법비는 비적 중에서도 가장 악독하고 잔인하다. 저자는 이 책에 ‘법비’들을 한 명씩 호명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을 고치거나 추가했던 정권의 지배자들과 그에 동조했던 법관들이 그들이다.
5·16 군사쿠데타 시절 혁명재판소와 혁명검찰부를 설치해 사법부는 그야말로 제사에 대추 밤 놓듯이 구색을 맞추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가령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는 군법회의에서 변론 중 자신은 “직업상 이 자리에서 변호를 하고 있으나 차라리 피고인들과 뜻을 같이하여 피고인석에 앉아 있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휴정 중에 옆방으로 불려가 잔뜩 두들겨 맞았다. 사법부에 대한 날선 불신의 눈초리가 어디 지금뿐이던가. 저자는 사법부의 70년 역사를 심판대 위에 올려놓는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저자는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사법부를 지키려다 지병이 도져 한쪽 다리를 절단했던 김병로 대법원장의 일생을 전한다. 유신체제는 가장 좋은 제도라고 했던 민복기 대법원장도 있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과거 청산이란 야심찬 포부를 취임사에서 발표했지만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책 말미에 저자는 다시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물으며, 사법부가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지 되묻는다.
김신성 기자 ss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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