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낮춰 지방서 첫 직장생활…일 힘들고 인간관계 녹록지 않아
생활비에 월세 내면 연애는 남일…열심히 살면 ‘쨍하고 해뜰날’ 위안
별 수 없이 눈높이를 낮춰 수도권보다 취업 경쟁률이 낮은 지방의 업체들을 노크했다. 다행히 지난해 말 충남도 내 한 중견기업에서 합격 소식을 알려 왔다. 그러나 잠깐 주저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일자리의 40.9%가 서울에 몰려 있고 처음 발을 내딛는 직장이 어떠한지가 중요하다는데 좀 더 서울에서 도전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12.5%)를 찍고 올해 취업문은 더욱 좁아질 것이란 뉴스를 보니 그냥 가길 잘한 것 같다.
취업이라는 산을 넘었지만 지방에서의 회사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부서 막내로 야근은 부지기수고 회식까지 겹쳐 매일 피로에 찌든 삶이 이어졌다. 따져보니 하루 평균 회사에 머문 시간만 11시간이다. 따뜻한 봄을 맞아 주말 휴식도 회사가 마련한 각종 행사에 반납하게 생겼다. 당장 이달부터 직장인 축구대회 준비로 매주 토요일 축구장에 불려나가고 있다.
격무는 그렇다치고 인간 관계의 어려움이 직장 생활을 더욱 힘들게 한다. 부장은 ‘꼰대’ 중의 꼰대로 이른바 ‘개저씨(개념 없는 아저씨의 줄임말 혹은 개와 아저씨의 합성어)’다. 부장은 상명하복식 사고를 예절의 덕목처럼 생각한다. 요즘 유행한다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의 신조어)’ 스타일이다. 처음 부서에 배치됐을 때 ‘내가 다시 군대에 온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과장은 그나마 괜찮지만 무턱대고 일을 떠맡겨 부담을 준다.
짬나는 틈틈이 즐길 여가 생활도 마땅한 게 없다. 서울에서만 살다 연고도 없는 곳에 오다 보니 혼자 술 마시는 횟수만 늘었다. 20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 언제 돈을 모으고 연애나 결혼을 할 수 있을지 엄두가 안 난다. 매달 40만원가량이 월세로 나가고 식비와 교통비, 통신비 등 생활비도 적지 않게 든다. 벌써부터 평생 ‘워킹푸어’로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스민다. 더 늦기 전에 다른 길을 찾아야 하나 싶다가도 부모님이 실망하실 것 같고 취업 준비를 다시 할 자신도 없다.
한 마디로 ‘흙수저’의 비애 같다. 우리 집이 좀 넉넉했으면 내 삶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주변에서도 성공하려면 본인의 능력보다 ‘부모님의 경제적 뒷받침’이 더 중요하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넉넉지 않은 형편에 대학 공부까지 시켜주시고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을 탓하는 건 옳지 않다고 되뇐다. 흙수저도 본인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며 살다 보면 한 뼘씩 성장하고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버텨보기로 했다.
※본 기사는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사람인’이 취업준비생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설문조사 결과를 참고해 가상인물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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