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마블은 말놀이의 일종으로 주사위를 굴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재산을 불리는 일종의 가상체험놀이이다. 세계를 무대로 성공의 꿈을 키워주는 아날로그 게임이다.
블루마블이 국내 최초의 보드게임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조선시대에 블루마블의 원조라고 할 만한 놀이가 있었다. 바로 명승지를 유람한다는 뜻의 ‘남승도(覽勝圖)’ 말놀이이다. 1820~184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구남승도(靑邱覽勝圖)’는 경포대, 한라산 등 조선시대 전국의 대표적 명승지 120곳이 망라되어 있다.
놀이에 참여한 사람들은 조선시대에 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여인에서부터 어부, 승려, 도사, 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는다. 각 명승지에는 유래가 있어 각 역할을 맡은 이가 특정 지역에 도착하면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명승지와 관련된 시 한 수를 읊어야 한다. 만일 그곳의 유래를 대지 못하면 연거푸 술을 마시게 해 인사불성이 되는 해프닝도 있었을 법하다. 당시 이 말놀이를 즐겨했던 아녀자나 유생들은 조선 팔도의 팔경과 누정, 이름난 산과 하천 등에 대한 유래를 익히고 실제 가본 것처럼 그곳의 정취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청구남승도에는 당시 국가에서 제작한 지리지에 나오는 명승들이 적용될 만큼 명승지에 관한 정보가 자세하고 보편화되었던 점이 눈에 띈다.
‘조선판 블루마블’ 청구남승도에서 확인되는 명승지들은 선현들의 정신수양과 역사 문화가 결집된 장소이며 소중하게 기억해야 할 국토의 일부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이원호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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