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8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기업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국책은행의 지원 여력을 선제로 확충해 놓을 필요가 있다”며 “무차별적인 돈풀기식 양적완화가 아닌 꼭 필요한 부분에 지원이 이뤄지는 선별적 양적완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된다”고 밝힌 데 이어 한은에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재차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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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근로자들이 28일 점심을 먹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한때 1인당 GDP가 6만달러일 정도로 세계적 부촌이었던 거제는 조선업계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앞두고 ‘유령의 도시’를 방불케 할 정도로 분위기가 흉흉하다. 거제=연합뉴스 |
그러나 한은은 요지부동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 외 공개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한은법에 산은을 상대로 출자하거나 후순위채를 인수할 근거가 없는 만큼 독자적으로 양적완화를 결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다. 정부가 추가경정예산 등 재정을 동원하는 ‘정공법’을 외면한 채 발권력에만 의존하려 든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할 정도로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했는지 의문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부와 한은 간 갈등은 갈수록 증폭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조만간 해운·조선업종의 구조조정 방안이 확정돼 산은 등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규모와 시기도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재정 투입을 주저하는 정부나 정부 보증이나 국회 동의 없이 재량으로 양적완화를 단행할 수 없다는 한은이 쉽사리 양보할 리 없다. 시장에서는 양측이 서로 책임떠넘기기에 급급하다 구조조정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키우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황계식·이우승 기자 cul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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