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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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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09 20:58:16 수정 : 2016-05-09 20: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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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이 중요” 중기 외면하는 취준생들
겉만 보고 선택하지 않기 정말 어려워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지인들이 신입사원 추천을 의뢰하는 일이 종종 있다. 아직 규모도 작고 뚜렷한 평판을 얻기 이전의 회사이지만 콘텐츠가 충실해 발전 가능성이 있으니 좋은 인재를 보내 달란다. 취업 준비 중인 젊은 친구들과 상담해 보면 대부분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유는 출발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아 대기업으로 이직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단다. 또 어떤 친구는 미래가 불확실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위험비용을 많이 지불하는 격이어서 그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야 한다는 소신을 밝힌다.

그럴 때 가끔 예전에 함께 읽었던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이야기를 한다. 특히 세 개의 상자 이야기를 중심으로 선택의 역설 문제에 대해 대화한다. 이 희극의 여주인공 포오샤는 결혼 상대자를 고르기 위해 세 상자를 준비한다. 그중 하나에 자기 초상화가 들어 있는데, 청혼자가 그것을 고르면 결혼할 수 있다. 각 상자에는 나름의 경구가 적혀 있다. “나를 선택하는 자는 숱한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금 상자) “나를 선택하는 자는 자신의 자격만큼 얻게 될 것이다.”(은 상자) “나를 선택하는 자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주고 걸어야 한다.”(납 상자)

처음 온 모로코공은 금 상자를 연다. 숱한 남자들이 바라는 바를 얻고 싶었던 그에게 주어진 것은 해골이다. “반짝인다고 해서 다 금은 아니다. (중략) 금칠한 무덤이 정말 에워싸고 있는 것은 벌레뿐이다”란 전언과 더불어. 다음으로 아라곤공은 은 상자를 고른다. 그에게 자신의 자격만큼이란 고작 백치 초상에 불과했다. 마지막으로 밧사니오 차례다. 겉모습에 깜빡 속을 수도 있는 교활한 시대를 경계했던 이 베니스의 신사는 ‘모험’을 선택한다. 거기엔 포오샤의 초상화와 축하의 메시지가 들어 있다. “겉모습으로 선택하지 않은 그대, 운은 좋았고 선택은 진실했도다. 이 운명이 그대 몫이니, 만족하라, 그리고 새 운명을 구하지 말라.”

응당 겉모습을 중시하는 시선에서라면 금이 가장 고귀하고 선호되는 대상이다. 당시 상황 또한 바야흐로 금으로 상징되는 돈과 경제적 가치가 급부상하던 때였다. 하지만 찬란한 황금이 거부되고 창백한 납이 행운의 상징으로 선택되는 극적 아이러니가 또한 역전이다. 금이 돈의 상징이라면, 납은 인간성의 상징이다. 외면과 내면이 뒤집히는 이 역전은 포오샤의 경우도 비슷하다. 모로코공과 아라곤공은 재산 많은 왕이거나 제후였다. 즉 현실적 조건으로 보면 밧사니오보다 훨씬 나았다. 그러나 포오샤는 밧사니오가 선택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낭만적 사랑의 감정과 함께 근대적인 신사에게 미래지향적 가능성이 더 많다고 생각한 것이다.

납이 금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 잠시의 겉모양과는 달리 내면의 진정한 본질 혹은 가능성이 따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이 인식, 셰익스피어는 물구나무서기로 그것을 웅변한다. 고양된 뒤집기의 미학을 창조한다. 그러나 극적 미학과 현실적 선택 사이에는 엄연한 거리가 있는 것일까. 겉만 보고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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