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옥(사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11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과도한 정부 개입 탓에 탄소배출권 시장 자체가 멈췄다”는 분석을 내놨다. 안 소장은 “시장 원리대로라면 배출권이 희소할 경우 가격이 올라야 하는데, 정부가 (배출권의) 가격 상한선을 정하는 바람에 가격 상승을 막았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가격 상한선이 탄소 배출을 줄일 때 드는 비용보다 더 낮기 때문에 굳이 남는 배출권을 팔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배출권 일부를 ‘시장 제어용’으로 쥐고 있는 상황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정부는 배출권 시장 가격이 오를 경우 시장 안정화를 위해 전체 배출권의 약 6%를 예비용으로 갖고 있다. 이에 대해 안 소장은 “열심히 탄소 배출량을 줄여 남는 배출권을 팔아 보상을 받고 싶어 하는 기업의 사기를 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래 제도에 대한 기업의 신뢰는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이다. 안 소장은 “일부 기업은 거래제가 얼마나 가겠느냐는 이야기까지 한다”며 “정부가 산업 전체를 바라보면서 거래 시장을 건강하게 발전시켜나기보다는 당장 어렵다고 비명을 지르는 업종 이야기만 듣는다”고 아쉬워했다. 시행 1년 만에 ‘무용론’까지 나오다 보니 기업들이 아예 제도 폐지를 예상한다는 것이다.
주관 부처의 정체성도 논란의 대상이다. 원래 배출권 거래와 관련해 환경부가 관장하던 업무가 얼마 전 기획재정부로 넘어갔다. 안 소장은 “온실가스 감축이 궁극의 목표인 환경부와 달리 기재부나 산업통상자원부는 배출량 감축 자체보다 산업과 재정 안정화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환경부가 주관할 때도 다른 부처의 주문들 때문에 제도의 취지가 많이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책 입안 과정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나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기관들의 주장이 과도하게 반영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할당량을 업종별로만 공개하고 기업별로는 기밀에 부치다 보니 이 정보를 얻기 위한 ‘로비’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조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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