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안과 직원이 23일 오전 제324회 국회 임시회에서 의결된 국회법 일부 개정안(청문회 활성화법) 등 130여개 법안을 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서류가방에 담고 있다. 연합뉴스 |
정부 일각에서 유력한 폐기방안으로 제기하는 자동 폐기론은 ‘보류거부’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보류거부는 대통령이 지정된 기일 내에 환부, 즉 안건 재의를 요청하지 않을 경우 법안이 자동으로 폐기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적용해 19대 국회 임기(5월 29일)가 끝날 때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 등의 공포를 미루면 자동 폐기된다는 것이다.
대통령 거부권을 규정한 헌법 53조가 보류거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국회임기 종료와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는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석준 국무조정실장(왼쪽 두번째)이 23일 오후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정부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정부세종청사 국무총리실 기자실을 찾아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국조실장은 개정안에 대해 “정부 업무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세종=연합뉴스 |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24일 통화에서 “예외적 상황에서 헌법을 해석할 때 보류거부 효과가 나도록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임기종료 후 법안 공포가 이뤄진 전례도 있다. 2008년 5월29일까지 임기였던 17대 국회는 그해 5월 16일 과학기술기본법을 본회의에서 처리했는데 이명박정부는 6월 5일에 이 법안을 공포했다.
자동폐기론이 맞다면 과학기술기본법은 폐기되어 18대 국회에서 처음부터 다시 심의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17대 국회에서 임기 종료 후 공포된 법안만 19개였다.
여야 3당 원내대표들이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회동을 갖고 제20대 국회 원구성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새누리당 정진석,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남정탁 기자 |
결국 청와대가 자동폐기 수순으로 국회법 개정안을 무력화시키려고 한다면 큰 논란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잡음이 나지 않으려면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게 유일한 방법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거부권 행사의 적법성 및 그 시기다. 이를 놓고도 학자들의 견해가 엇갈린다.
먼저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 행사의 근거가 되는 위헌요소가 있느냐가 관건이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통화에서 “위헌소지가 어느 정도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국회가 청문회를 남용하게 되면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입법부가 과도하게 행정부나 사법부를 통제할 경우 ‘삼권분립’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오늘날 행정부는 입법부와 사법부에 비해 조직이나 인력, 권한이 훨씬 크기 때문에 (행정부 권한의) 오·남용에 대한 통제요소가 필요하다”며 위헌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25일부터 해외순방에 나서는 박 대통령을 대신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를 두고도 견해가 엊갈린다. 황 총리는 31일 국무회의를 주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총리가 대행을 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유고 시만 가능한데, 해외순방을 대통령 유고로 볼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라고 말했다. 반면 장 교수는 “누가 하든 법적 효력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도형·이동수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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