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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에 숨겨진 '유물의 보고'…다시 보자, 버려진 옛 절터

입력 : 2016-06-09 20:59:23 수정 : 2016-06-09 20:5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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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정병 출토 계기로 관심 높아져
1993년 백제의 영역이었던 부여 능산리의 절터에서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백제금동대향로’(사진)가 발굴됐다. 가장 돋보이는 예술적 성취의 하나로 꼽히는 이 유물은 1996년 국보 287호로 지정됐다. 2007년 공개된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금동대향로 이후 최대의 성과’라는 평가를 받는다. 청동제 사리기에는 발굴지인 왕흥사가 백제 위덕왕 재위 기간 중인 577년에 창건되었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따라서 600년에 창건되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잘못되었음이 확인됐다. 백제금동대향로, 왕흥사 사리기가 모두 이제는 터로만 남아 있는 절터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은 폐사지의 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주시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신라왕경 핵심유적복원 사업의 핵심 중 하나가 황룡사지임을 감안하면 학술적, 예술적 가치에 더해 활용 가치 또한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원도 삼척의 깊은 산 속 흥전리 사지에서 발굴된 완전한 형태의 ‘청동정병’ 2점이 지난 2일 공개되면서 사지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지난 2일 공개된 강원도 삼척의 흥전리 사지에서 불교문화재연구소 관계자가 유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지는 문화재적, 학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시대상을 파악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문화재청 제공
◆길 위의 박물관… 학술적·문화재적 가치 높아


폐사지의 가치는 석탑, 불상, 비석 등 많은 문화재와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8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전국의 폐사지는 5393곳에 이른다. 이 중 2228곳에서 4976건의 소재문화재(폐사지에 남아 있거나, 있었던 문화재)가 있다. 소재문화재 중 국보·보물로 지정된 것은 373건 427점, 시도문화재는 662건 793점에 이른다. 38곳의 폐사지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폐사지를 ‘노천 박물관’이라고 하는 게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수치다.

시대상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자료가 되기도 한다. 삼척 흥전리 사지는 청동정병의 발굴로 화제가 됐지만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통일신라시대 구들의 구조 등에 더 주목하는 학자들도 있다. 발굴을 담당한 불교문화재연구소 임석규 실장은 “지금까지 확인된 구들은 단선으로 되어 있는데, 흥전리 사지의 것은 가지를 친 듯한 모습이라 흥미롭다”며 “건물 유구 중앙에서 발견된 적심은 사찰 건물 내에 승탑이나 비석을 세웠던 것을 보여주는 첫 사례일 수 있다는 추측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역사적 인물, 사건 등과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중요하다. 삼국유사에는 “최치원은 본피부 사람이며, 황룡사 남쪽 미탄사 남쪽에 옛터가 있는데, 이것이 최치원의 옛집”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미탄사의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 추정만 하다가 2014년 발굴에서 ‘味呑’(미탄)이라는 글자가 적힌 기와가 나와 경주시 구황동의 절터를 미탄사지로 확정했다. 최치원의 옛집 ‘독서당’의 위치를 파악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폐사지는 설화, 구비문학 등 당시의 시대상과 관련된 풍부한 자료까지 품고 있어 복합 역사문화유적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관리 실태까지 드러낸 폐사지 조사, “갈 길이 멀다”


길게는 수백년 동안 존재했을 폐사지지만 구체적인 가치, 실태가 파악된 것은 사실 얼마되지 않았다. 문화재청,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전국의 폐사지를 대상으로 한 학술조사를 시작한 것이 2010년이고 2013년부터는 중요 폐사지에 대한 시·발굴조사에 착수해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2922곳의 현황조사를 마쳤고,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140여곳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뒀다.

조사를 통해 드러난 또 하나 주목할 사실은 폐사지의 상당수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수목이 마구 자라 유구가 훼손되거나 무덤 조성, 경작 행위 등에 노출된 곳이 적지 않다. 소재문화재의 분실, 훼손, 부적절한 복원 등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문제다.

부실한 관리 실태까지 확인된 만큼 조사를 충실하게 마무리한 뒤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임 실장은 “예전에는 ‘폐사지가 있다 혹은 있었다’라는 정도만 알았다면 이제는 관리실태도 파악해 가는 중”이라며 “발굴까지 마무리해 정확한 가치를 밝힌 뒤 지정문화재로 관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원, 인력 부족 등으로 폐사지 발굴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요 폐사지를 제대로 발굴하기 위해서는 한 해 20억원 정도가 필요하지만, 2013년 이후 책정된 예산은 해마다 2억원 정도에 불과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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