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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생리대, 민망한 단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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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09 18:10:18 수정 : 2016-06-09 1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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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 남학생들은 특정한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고전문학을 배우는 국어시간이었다. ‘덕으란 곰배에 받잡고 복으란 림배에 받잡고…’ 고려가요 ‘동동’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 작품은 월별로 연을 나눠 노래하는 월령체, 즉 달거리체 문학의 효시로서…’ ‘달거리’라는 말에 사내 녀석들은 키득키득했다. 가임기 여성이 매달 겪는 생리현상, 월경을 떠올린 것이다.

남녀 할 것 없이 ‘달거리’나 ‘생리대’는 입에 올리기가 민망한 단어다. 여성들은 창피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느끼고, 남성들은 지저분한 것쯤으로 여기는 탓이다. 그래서 생리대는 여성운동의 상징으로 종종 쓰인다. 10여년 전 생리대에 대한 부가가치세 비과세 당위성을 놓고 벌어진 논란이 대표적이다. 얼마 전 파키스탄에서도 대학교 여학생들이 월경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깨뜨리기 위해 캠퍼스 벽에 생리대를 내거는 일이 있었다. 생리대에는 ‘이건 정말 자연적인 거예요’, ‘왜 내가 이것 때문에 창피를 당해야 하죠’라는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다시 생리대가 뜨거운 공론의 장에 올려졌다. 지난달 23일 생리대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는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올린다고 발표하면서다. 인터넷에는 항의의 글이 쇄도했다. 트위터에는 생리대를 살 수 없는 학생이 결석한 채 집에서 수건을 깔고 누워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학교 화장실 휴지, 심지어 신발 깔창으로 대신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글까지 올려졌다.

신발 깔창 얘기의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생리대를 구입할 월 6000원 정도의 돈이 없어 학교 보건실에서 받아가야 하는 여학생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엄연한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 생리대는 여성에게 생활필수품이지만 분유나 기저귀, 쌀, 식품 등과 달리 저소득층 지원 품목에서 제외되어 있다고 한다. 뒤늦게 성남시, 전주시 등 지자체들이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생리대를 지원하겠다고 나섰고 학교에 생리대 비치를 의무화하는 ‘생리대법’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다행이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생리대를 부끄럽고 지저분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학교에 생리대를 제 아무리 넉넉히 비치해 놓더라도 아이들이 창피해서 받아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오죽하면 서울시가 설문조사했더니 저소득층 아이들이 ‘생리대를 주려면 아무도 모르게 달라’고 한결같이 얘기했을까. 우리사회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생리휴가나 생리결석도 언제까지나 법전이나 학칙 속 권리로만 존재할 것이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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