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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정치 매너리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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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20 22:37:06 수정 : 2016-06-20 22: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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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 민의 심판에도
정치권 달라진 것 없어
집권당은 지리멸렬
야당은 립서비스 열중
나라 위기 빠졌을 때
정치가 리더십 보여줘야
4·13 총선을 치른 지 두 달여가 됐고 20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지 20일이 지났다. 기득권 정치에 신물 난 국민은 매서운 회초리로 심판했으나 정치권은 유권자의 뜻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뼛속 깊이 새기지 못했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바꿔줄 것이란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변했다. 집권당은 지리멸렬하고, 그나마 좀 나아 보이는 야당은 립서비스에 열중하고 있다. 2년 임기의 상임위원장을 1년씩 쪼개 나눠 먹고, 전문성은 아랑곳없이 선수·계파·지역 안배에만 초점을 맞춰 ‘축구선수를 농구장에 놓아두는’ 상임위 배치는 20대 국회가 어떻게 굴러갈지 짐작하게 한다.

사람에게는 현상유지 편향이 있다. 관성 또는 타성이 작용한다. 다수의 암묵적 동의를 강조하는 의미의 관행으로 포장되곤 한다. 변화해야 하는 순간에도 변화하지 않고 익숙한 것, 과거의 것에 매달린다.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현실의 안온함에 빠지면 변화는 불가능하다. 

김기홍 논설실장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도 ‘현상유지’다. 국내투자 둔화와 고용 부진, 구조적 소비 부진과 잠재적 성장률 하락에 따른 장기불황은 일본 사회를 바꿔놓았다. 수출기업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종신고용이 사라진 자리에 비정규직 근로자들로 채워졌다. 기업은 현상유지에 매달렸다. 리스크를 피해 투자를 꺼리고 뭉칫돈을 쌓아뒀다. 저성장 시대에 익숙한 젊은층은 돈벌이나 출세엔 도통 관심 없고 현실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가 됐다. 자신을 하류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하류사회’로 비하하는 풍조도 생겼다.

일본이 그토록 저주했던 ‘잃어버린 20년’이 한국에 배아줄기세포로 복제되듯 이식됐다. 저성장 장기화에 활력을 잃었다. 기업은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있고 직업 안정성을 선호하는 취업문화가 공무원 시험 열풍을 달구고 있다. 젊은이들은 N포세대가 됐다. 그러나 한국의 ‘잃어버린 20년’은 일본의 그것보다 훨씬 악성이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불거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깊어진 사회적 불신과 갈등, 양극화는 결코 치유될 수 없을 것 같은 ‘한국병’이 됐다. 발등의 불인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정부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무능 때문이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극복하는 것은 국민의 힘이지만 국민의 힘을 모으는 것은 정치 리더십이다. 사방팔방이 다 막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치 쪽으로 눈을 돌려보지만 안타깝게도 정치권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줄 만한 주제가 못 된다. 여야가 시원한 사이다 정치라도 해서 위기 극복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지만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할 때가 더 많다. 정치는 여전히 무능하고 무기력하다. 간장종지만 한 그릇이 하루아침에 ‘갈등, 차별, 분열, 불공정의 고리를 끊는 국민통합의 용광로’가 될 수 없다.

4·13 총선으로 20년 만에 양당체제가 무너지고 3당체제가 출현했다. 정치가 스스로 못하니 국민이 직접 나서 정치판을 바꿔보겠다고 했던 것인데 정치권 화답이 영 시원찮다. 사람만 바뀌었을 뿐 민의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개혁도 논의 대상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자신들이 국민에게 포기하겠다고 약속한 특권 가운데 몇 가지라도 내려놓을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고작 3만5000원짜리 ‘금배지’를 없애는 것이다. 배지가 “특권과 예우의 상징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지적엔 동의하지만 배지를 떼는 것이 특권 포기의 본질은 아니다. ‘구태의연’을 ‘환골탈태’로 포장해 생색이나 내려는 구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개헌 문제도 마찬가지다. ‘1987년 체제’의 위기는 정치 시스템만이 아닌 우리 사회의 총체적 위기다. 87년 체제가 수용하지 못하는 갈등과 분열을 녹여내고 시대정신을 담는 큰 틀을 만드는 방향으로 논의돼야 한다.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은 개헌을 통한 지속가능한 국가 발전 설계를 막는 것이다.

산처럼 쌓아둔 쓰레기더미가 곳곳에 널려있다.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정치가 해줘야 한다. 정치가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쓰레기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그것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재다.

김기홍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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