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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조선의 문화충격, 곤여만국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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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31 20:57:21 수정 : 2016-08-31 20: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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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임금의 증손자 낙창군 이탱(?~1761)은 네 번에 걸쳐 연행을 다녀왔다. 한번은 북경에서 귀국한 뒤, “가까이서 보면 매우 거칠지만, 벽에 걸어 보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며 서양화가를 만난 사실을 친구들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조선 사람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개념에 입각하여 중국 중심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1708년 사신으로 북경에 간 최석정이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를 가져오면서 이러한 전통적 세계관이 획기적으로 변화됐다. 1602년 마테오리치가 목판으로 간행한 이 지도를 보고 숙종은 최고의 화가와 지도 전문가를 동원해 ‘조선식’ 초고본을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어람본도 제작했다. 초고본(보물 제849호)은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고 남양주 봉선사에 있던 어람본(사진)은 소실되어 흑백사진만 전해지고 있으나 2011년 실학박물관에서 복원 제작한 바 있다. 

유럽, 아프리카 5대주와 각 나라의 지명 등 중국을 벗어나 전 세계의 모습을 한눈에 보여주는 이 지도는 조선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훗날 고종은 궁중도서관에 곤여만국전도 축소본과 세계지도를 다수 비치해 조선을 변화시킬 개화를 준비했다. 그러나 백성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심어주고자 했던 숙종과 고종의 노력은 끝내 결실을 맺지 못했다.

정보통신기술 융합을 통해 진행 중인 ‘4차 혁명’의 성패 여부는 우리의 의식 변화에 있다는 점을 집경당에 서서 곤여만국전도를 떠올리며 생각해본다.

황정연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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