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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영화인사이드] 신선한 ‘콜드 누아르’ 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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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08 21:22:14 수정 : 2016-09-08 21: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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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암살’부터 올해 ‘동주’, ‘귀향’, ‘덕혜옹주’까지 흥행에서도 성공했다. 이번 추석 대목에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 ‘밀정’이 여기에 가세할 예정이다.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더불어 흥행 성공까지 거두는 이유는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위안부 문제에 이르기까지 70년이 지났지만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는 한때 독립운동을 했지만 변절자가 된 이정출(송강호)의 삶을 다룬다. 정출은 독립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해 일제 밑으로 들어가서 일본 경찰이 된다. 그는 무장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의 뒤를 캐라는 특명을 받고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공유)에게 접근한다. 서로의 정체를 알면서도 가까워진 두 사람, 영화는 우진을 만나게 되면서 갈등과 고뇌에 빠지는 정출의 심리를 좇는다.

‘밀정’은 일제 강점기를 다룬 여타의 영화와는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작년 여름 극장가를 강타했던 ‘암살’은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물론 항일과 친일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접근한다. 그러나 ‘밀정’은 일제가 투입한 밀정인지 혹은 독립투사인지 뚜렷하지 않은 인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회색분자로 이정출을 내세운다. 영화는 일제 강점기 항일과 친일의 극단에 있지 않고 양극의 중간 지점에 있는 보통의 다수를 대변하고 있다. 정출은 일제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의열단 간부(박희순)를 죽이지 못한다. 반면 고문실에서는 의열단원 연계순(한지민)을 고문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김지운 감독은 감정 노출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항일을 이야기하는 콜드 누아르 영화를 선보였다. 첩보영화 장르임에도 액션보다 인물의 내면과 미장센에 공들여 신선함을 주었다. 난세에 경계선 위에서 외줄 타듯 살아야만 했던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들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 암울한 역사가 만들어낸 희생양들에게서 온기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누가 적이고 동지인지 알 수 없었던 불안과 혼돈의 시대를 영화는 지루하리만큼 건조하고 차갑게 그린다.

독립운동을 다루고 있지만 애국심 또는 민족의식을 강조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감정을 개입하기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객체적 입장에서 항일을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 간 심리 묘사에 치중하다 보니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면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워너브러더스가 처음으로 우리 영화에 투자한 ‘밀정’은 분명 세련되고 감각적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독립투사인가 밀정인가.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그리고 항일과 친일의 중간에 있었던 대중들의 삶에 대해 영화 ‘밀정’은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역사 속에서 애매모호한 입장을 가진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영화는 고뇌하면서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어중간한 입장을 대변한다.

추석을 앞두고 영화 ‘밀정’은 다른 일제 강점기 영화와는 달리 새로운 시선으로 우리에게 생각할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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