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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바람길] 고향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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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09 20:31:07 수정 : 2016-09-09 20: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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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노래방에 가면 단골로 찾는 노래는 남인수가 부른 ‘고향의 그림자’였다. 젊지는 않지만 그리 늙지도 않았던 녀석은 그 ‘뽕짝’을 고개를 숙이고 애국가처럼 부르곤 했다.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랩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남인수는 물론 그 노래마저 생소하기 이를 데 없을 테지만 배경과 선율을 접하면 그리 싫지 않을 수도 있다. 1954년 전쟁이 끝난 후 아직 피난지에서 고향을 찾지 못했거나 찾아갔다 하더라도 폐허가 된 그곳에서 많은 이들이 설움을 삼켜야 했던 시절에 나온 노래다.

“찾아갈 곳은 못 되드라 내 고향 버리고 떠난 고향이길래/ 수박등 흐려진 선창가 전봇대에 기대서서 울적에/ 똑딱선 프로펠라 소리가 이 밤도 처량하게 들린다/ 물 위에 복사꽃 그림자 같이 내 고향 꿈은 어린다….” 이 노래의 화자가 서 있는 배경은 아마 피난지 부산쯤일 것이다. 수박등 흐려진 선창가 전봇대가 있고, 밤 부두 너머에서 똑딱선 프로펠러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몸은 비록 낯선 부두에 있지만 타관 땅 어둔 밤바다에는 복사꽃 그림자가 떠 있다. 손로원이 지은 유행가 가사지만 어설픈 시를 능가한다.

부모를 일찍 여읜 그의 고향은 서울이었다. 돌아갈 곳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고향을 떠난 적도 없는 녀석이 무에 그리 청승맞게 술만 마시면 돌아갈 곳을 그리워하는지 그때는 잘 몰랐다. 출감 날짜를 앞둔 죄수가 아내에게 편지를 써서 동네 어귀 나무에 당신이 노란 손수건을 매달면 날 용서한 줄 알겠지만 보이지 않는다면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지나칠 것이라고 한 것인데, 아내는 손수건 한 장만으로는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 같아 동네 사람들까지 나서서 나무를 온통 노란 손수건이 가득 달린 은행나무처럼 만들었다는 실화를 언급하며 녀석이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도 기억난다. 그리운 이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고향 아니냐고 주사를 부렸던 것 같기도 하다.

돌아갈 고향이 있고 기다리는 이가 있다면 더 말할 것 없다. 시골 마을에까지 아파트들이 죽순처럼 솟아나는 이즈음에는 어디를 가나 비슷한 풍경이 되고 말았지만 굳이 돌아갈 물리적 공간만 고향인 것은 아니다. 다가오는 귀향의 날들에 홀로 외로운 이들이라도 고요히 눈을 감으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 그리운 이를 떠올리고 애모하는 그 여정도 귀향의 길이다. 고향의 그림자를 좋아하던 녀석은 지난해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영원히 돌아가는 소원을 이루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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