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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애독서] 역사가는 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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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19 21:33:23 수정 : 2016-09-20 00: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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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지음/김택현 옮김
적어도 20년 이상 나의 책장을 지켜온 책들이 네다섯권 정도 있다. 철학책은 현실을 떠나기 위해 읽고, 논리학 책은 현실과 마주치기 위해 읽는다. 소설은 인간을 이해하려고 읽고, 과학책은 우주와 시간을 이해하려고 읽는다.

E. H. 카가 쓴 ‘역사란 무엇인가’는 그 모든 요소가 다 섞여 있는, 지금의 내가 있도록 만든 스승과도 같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생각하고 글 쓰는 데 큰 영감을 얻었다.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장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독자가 생각해 보도록 함으로써 정의에 대한 ‘촉’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역사란 무엇인가는 저자가 오랜 연구를 통해 도달한 역사철학의 한 지점으로 독자들이 쫓아오도록 만든다. 철학에서는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이 좋은 방법이지만 역사에서는 그것이 가능하지도, 적절치도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대학 신입생 시절 그 책의 주장과 문체에 공감할 수 없었다.

역사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자주 떠오른다. 작년 말에도 국정교과서가 논란이 되지 않았던가. 그때마다 핵심 논점은 사실과 해석, 개인과 사회, 과학과 도덕, 순환과 진보라는 대립되는 개념으로 좁혀진다. 놀랍게도 그에 관한 답은 이 책에 이미 제시돼 있다. 그래서 20대, 30대, 40대, 그리고 지금 50대에 다시 읽는다. 그때마다 새로운 것을 느낀다.


많은 이들은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제1장의 결론만 기억한다. 이에 비해 나를 전율케 한 것은 ‘역사가는 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한다’는 구절이다. 역사가에게 과거는 조각 맞추기 식의 퍼즐이 아니다. 이마누엘 칸트나 게오르크 헤겔이 말한 ‘역사의 진보’와 ‘인류 사회의 전진’이라는 희망적 신념의 증거들을 찾는 작업이다. 미래만이 과거 해석의 열쇠를 갖고 있고, 역사 연구는 특수성에 담긴 보편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참으로 심오하다.

경제학을 전공한 나는 이 책에서 영감을 얻고 역사가를 흉내 내고 있다. ‘과거를 상상하며’ 각종 사료들을 뒤지다가 답이 막히면 그 책을 또 읽으면서 힘을 얻는다. 이는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루카스 교수가 역사학도에서 경제학도로 변신한 것과 반대과정이다.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쉴 틈 없이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기록된 모든 것은 이미 어제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의 금융사학자 존 클래펌은 “경제학자란 좋건 싫건 역사학자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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