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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세월이 켜켜이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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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22 10:00:00 수정 : 2016-09-21 20: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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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섬의 이력 새겨진 '수월봉'
제주 고산리 수월봉에서 서귀포 방향으로 차로 5분가량 떨어진 곳의 지층은 수월봉 인근처럼 돌이 박혀 움푹 들어간 지층은 거의 없고, 평평한 지층으로만 이어져 있다. 분화구로부터 거리가 좀 떨어져 있다 보니 돌은 날아오지 못하고, 화산재 등만 날아와 지층을 이뤘다.
섬 내에서 한라산 서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제주도에서 보기 힘든 평야지대다. 들판을 따라가다 보면 해안가 끝에 봉우리가 서있다. 해안에 돌출해 있는 높이 약 77m의 언덕인 수월봉이다.
수월봉 인근의 해변은 화산 폭발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듯 모래가 검다.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수월봉 전망대에 오르면 드넓게 펼쳐진 제주의 바다와 섬이 보인다. 차귀도와 와도다. 두 섬 모두 화산섬이어서 윗부분은 초록빛 풀들이 융단처럼 깔려 있지만, 절벽은 검은 바위로 둘러쳐져 있다. 해안가에는 다양한 모양의 검은 현무암들로 이루어진 검은 해변이 이어진다. 제주 특유의 해안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곳이다. 특히 이 풍광은 일몰 때 더 빛을 발한다. 구름과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며 차귀도 너머로 해가 지는 풍경은 탄성을 자아낸다.
  
수월봉 인근에 있는 차귀도 너머로 해가 지는 풍경은 탄성을 자아낸다. 화산섬 차귀도의 윗부분은 초록빛 풀들이 융단처럼 깔려 있지만, 절벽은 검은 바위로 둘러쳐져 있다.

수월봉의 이 같은 풍경은 어찌 보면 덤이다. 그림 같은 풍경을 간직한 수월봉에 올라 절경을 감상했다고 끝이 아니다. 수월봉은 화산섬 제주가 어찌 생겨났는지 알 수 있는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이다. 수월봉의 진짜 모습은 정상이 아닌 해안절벽 아래 ‘엉앙길’을 걸어야 볼 수 있다. 제주 사투리인 ‘엉앙’의 ‘엉’은 절벽, ‘앙’은 아래라는 뜻이다.

수월봉 정상에 오르는 길 옆으로 차가 다닐 수 없도록 막아놓은 곳에서부터 제주의 흔적 찾기는 시작된다.

길 옆으로 절벽들이 이어져 있다. 절벽은 층층이 쌓인 흙과 돌로 지층을 이루고 있다. 마치 땅속 깊숙이 박혀 있던 지층이 지진 등으로 융기한 듯하다. 교과서에서 보는 지층의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지층은 지진으로 퇴적층이 융기한 것이 아니라 수월봉 인근에서 화산이 폭발해 날아온 돌과 화산재 등이 쌓여 만들어진 흔적이다.
제주 고산리 수월봉 용머리 절벽.

왼편에 있는 수월봉을 바라보면 바로 앞쪽 절벽은 고개를 빳빳이 쳐든 용이 앉아 있는 듯하다. 용머리를 이루는 절벽은 수월봉 정상 고산기상대가 있는 곳까지 쭉 이어져 있다.

해안을 따라 굴곡을 이루는 지층 절벽이 계속 이어져 있는데, 많은 돌들이 박혀 있다. 화산 폭발 때 날아온 돌들이 흙 사이에 박힌 것이다. 돌이 박힌 지층은 다른 층과 달리 움푹 패어 있다. 수월봉 지층은 돌이 박혀 울퉁불퉁한 지층, 수평으로 발달한 지층, 층리가 발달하지 않은 지층 등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화산 폭발이 있었던 1만8000년 전에 형성된 여러 지층이 현재까지도 그대로 보존돼 있는 것이다. 이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2010년 인증받았다.
제주 고산리 수월봉의 지층은 인근에서 폭발한 화산에서 날아온 돌과 화산재 등이 쌓여 만들어진 흔적이다. 해안을 따라 굴곡을 이루는 지층 절벽이 계속 이어지는데, 많은 돌들이 박혀 있다. 화산 폭발 때 날아온 돌들이 흙 사이에 박힌 것이다. 지층은 돌이 박혀 울퉁불퉁한 지층, 수평으로 발달한 지층, 층리가 발달하지 않은 지층 등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지층에 돌이 박혀 있는 것은 이곳이 화산이 폭발한 분화구에서 가까운 곳이란 의미다. 돌처럼 무거운 것은 폭발장소에서 가까운 곳에 떨어지고, 모래 등 가벼운 입자는 멀리 날아갔다. 이처럼 화산분출물들이 뒤섞여 사막폭풍처럼 날리는 것을 화쇄난류라 한다.

수월봉에서 서귀포 방향으로 차로 5분가량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면 수월봉 주변 지층과 확연히 다른 화산 폭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해녀탈의실이 있는 곳인데, 탐방로를 따라 내려가면 수월봉 인근과 같은 지층이 형성된 절벽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수월봉 인근처럼 돌이 박혀 움푹 들어간 지층은 거의 없고, 평평한 지층으로만 이어져 있다. 분화구로부터 거리가 좀 떨어져 있다 보니 돌은 날아오지 못하고, 화산재 등만 날아와 지층을 이뤘다. 또한 이 주변은 화산 폭발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듯 모래가 모두 검은 색이다.
수월봉 절벽 곳곳에선 물이 떨어지는데, 화산재 지층 아래 진흙으로 된 고산층을 통과하지 못한 물이 넘쳐 흘러나오는 것이다.

수월봉에서 바다를 보면 작은 돌섬이 머리만 뾰족이 내밀고 있다. 화산 분화가 이름없는 그 섬 주변에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육지였다면 한라산이나 백두산처럼 분화구 모양을 이뤘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에서 화산이 폭발해 분화구 등이 파도와 바람 등에 의해 깎여나가 현재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마을엔 ‘수월이’와 ‘녹고’ 남매가 어머니 병환을 고치기 위해 약초 오갈피를 구하다 절벽을 오르던 누이 수월이가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에 ‘수월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또 절벽 곳곳에선 바닥으로 물이 떨어지는데, 죽은 누이를 그리워하며 슬퍼하던 동생의 이름을 따 ‘녹고의 눈물’이라 부른다. 사실 ‘녹고의 눈물’은 화산재 지층 아래 진흙으로 된 고산층을 통과하지 못한 물이 넘쳐 흘러나오는 것이다.
일제 때 파놓은 갱도진지.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에 밀린 일제는 미군이 제주도와 일본 본토를 공격할 것에 대비해 고산리 일대에 자살특공대를 운영했다.

수월봉엔 화산섬 제주 흔적 외에도 일제 때의 갱도진지가 있다.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에 밀린 일제는 미군이 제주도와 일본 본토를 공격할 것에 대비해 고산리 일대에 자동차 엔진을 탑재한 고속보트를 배치하고, 자살특공대를 운영했다. 수월봉엔 당시 보트 격납고와 폭약 창고 등의 모습이 남아 있다. 이곳은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뒤 처음으로 미사를 집전한 곳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서품을 받은 뒤 돌아오던 배는 풍랑을 만났고, 제주 고산리 부근으로 떠밀려 왔다. 이를 기념해 ‘김대건신부 표착기념관’이 조성돼 있다.

제주=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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