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참전 경험을 가진 작가에게는 남다른 감회로 다가왔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선에서, 그래도 고국에서 자식을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를 떠올리며 견뎌냈다. 강제징용된 이들의 나이도 작가와 매한가지로 20대 전후의 꽃다운 청춘들이었다. 가스폭발 등 탄광사고가 다반사였던 비좁은 해저탄광에서 12시간 노역을 견디며, 꼭 살아서 고국의 어머니 품에 안기리라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춘들은 병에 걸리거나 사고사로 이국땅에서 스러져 갔다. 감옥이나 다름없는 지옥섬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익사한 이들도 많다.
아픈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군함도는 여전히 사진 속에 건재하다. 게다가 일본은 2015년 군함도를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으로 치장해 세계유산으로 등록했다. 자신들이 보고 싶은 역사만 내보이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치부가 결코 사라지지 않을진대, 나가사키 ‘군함도 박물관’에선 한국어 통역조차 허용하지 않는 모습에 작가는 서글픈 분노까지 느꼈다.
역사에서 지혜를 얻고자 한다면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조차도 정면으로 직시해야 하는 법이다. 독일과 일본이 자주 비교되는 이유다.
작가는 군함도의 아이러니를 흑백사진을 통해 웅변하고 있다. 먹을 물에 풀었을 때의 짙거나 옅은 색조의 흑백사진으로 생기를 불어넣었다. 수묵화 같은 기운생동으로 아픈 역사를 우리 앞에 다시 소환해 내고 있는 것이다. 손에 잡힐 듯 군함도가 저만치 다가오고 있다. 말없는 역사의 증인처럼.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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