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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1000원 지폐 속 퇴계의 이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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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05 21:02:25 수정 : 2016-10-05 2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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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원은 학문 연구와 선현에 대한 제향을 위하여 지방 선비들이 설립한 사립 교육기관이다. 조상들은 서원을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사상을 반영해 건축하였는데 서원의 제도적 정착, 건축적 전형의 완성에는 조선 중기 유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의 역할이 컸다. 퇴계가 수십년의 고민 끝에 세상에서 물러나 조용히 살 곳으로 선택한 곳이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이며, 직접 건축에 참여한 건물이 도산서당이다.

건물은 동서방향으로 세 칸을 지었는데 길이 7.4m, 폭 2.4m로 일반버스보다 작다. 동쪽 한 칸은 사방이 트인 마루이고, 가운데 한 칸은 온돌방, 서쪽 한 칸은 부엌이다. 마루의 이름은 ‘완락재’(玩樂齋), ‘즐겨 완상하니 족히 여기서 나의 일생을 마쳐도 싫어하지 않으련다’는 뜻이다.

12세에 논어를 배운 이후 40년을 넘게 유학을 공부하고 57세가 되어 자신이 생을 다할 때까지 편안하게 즐겨 감상하고, 자신의 학문이 바위에 깃들어 단단해지기를 바라면서 지은 퇴계의 이상향이 도산서당인 것이다. 마루 동편에 작은 살평상을 덧대고, 앞에 네모난 연못을 파서 연(蓮)을 심어 ‘정우당’(淨友塘)이라 하였으며, 다시 그 동편에 ‘몽천’(蒙泉)이라는 샘을 두었다. 마당의 담은 중간을 끊어 싸리문인 ‘유정문’(幽貞門)을 두어 건축이 자연과 통하게 하고, 샘 위에 단을 쌓아 매화, 대나무, 소나무, 국화를 심어 ‘절우사’(節友社)라 이름을 정한 뒤 벗처럼 대했다.

1976년에 안동댐이 준공되고 새 진입로가 생기면서 퇴계가 그렸던 이상향은 많이 달라졌으니 400년 전 대유학자가 꿈꿨던 이상향을 원래 모습대로 보고 싶어질지 모르겠다. 그럴 때 1000원권 지폐 뒤 겸재 정선(1676~1759)이 그린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사진)’를 보기 바란다. 서당 안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퇴계를 만날 수 있다.

조상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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