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는 전란을 피해 말년에는 아예 배를 한 척 사서 장강을 오르내리며 배에서 살다가 강 위에서 죽었다. 그가 병 들어 국화주 한 잔도 마시지 못하는 신세로 타향 물길을 오르내리며 읊은 시름은 애잔하고 서글프다. 오늘은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날이고 보름 후 상강에 이르면 그 이슬은 서리가 된다. 계절은 시절처럼 속절없이 흘러 어디로 그리 급히 가자는 건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리운 벗들 만나 국화주 아니라 찬 이슬이라도 기울일 수 있다면 아직 복이 남아 있는 셈이다. 두보처럼 병들어 높은 곳에 올라 원숭이 슬픈 울음소리만 듣는 처지에 비하면 말해 무엇할까.
한로는 여름새와 가을새가 각기 제 자리를 찾아 날아가는 날이기도 하다. 제비는 강남으로 떠나고 기러기가 온다. 오래전 한 가객은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라고 시를 노래했거니와 바야흐로 아침저녁 선선한 대기에 움츠러드는 이즈음은 ‘너무 아픈 사랑’을 하기엔 힘든 절기이다. 시인이 작별했다는 가을새는 떠나가는 새였을 테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여름새가 맞다. “한 고개 넘어 또 너머로 보인다/ 한 조각 흰구름에 걸린 둥근 달/ 그 파리한 달빛에 안긴 밤의 적막이/ 드높이 자란 갈대밭에 드리우는데/ 기러기 한 떼 줄지어난다/ 처량히 울며 줄지어난다/ 찬 서리 내려 하얘진/ 저 산 너머로/ 기러기떼 줄지어난다”는, 지난 시절 애창했던 ‘기러기’도 추억 속에서 날아오른다. 국화주 마실 중양절, 아직 하루 남았다. 그리운 이 떠오르면 서둘러 청해볼 일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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