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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찬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寒露)이고, 내일은 음력 구월구일 중양절이다. 이제 가을은 절기로 따지면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만 남았다. 이후 바로 입동이다. 중양절은 산수유 붉은 열매 들고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는 오랜 전통을 지닌 날이다. 중국에서는 추석보다 더 의미를 부여할 정도로 본격적인 수확을 재촉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중국의 시성 두보는 이날을 시제로 읊었다. “중양절 홀로 맞아 한 잔 술도 못 마시고/ 병든 몸 간신히 강 언덕에 오르니/ 죽엽청주도 나와는 인연 없어/ 이후론 국화꽃 피어도 감흥이 없네”라고. 이어서 지었다. “타향에 해가 지니 검은 원숭이 슬피 울고/ 고향엔 서리 내리기 전 흰 기러기 오건만/ 동기간은 어디들 가 있나 아득하구나/ 전란과 노쇠함이 나를 초조하게 하네.”

두보는 전란을 피해 말년에는 아예 배를 한 척 사서 장강을 오르내리며 배에서 살다가 강 위에서 죽었다. 그가 병 들어 국화주 한 잔도 마시지 못하는 신세로 타향 물길을 오르내리며 읊은 시름은 애잔하고 서글프다. 오늘은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날이고 보름 후 상강에 이르면 그 이슬은 서리가 된다. 계절은 시절처럼 속절없이 흘러 어디로 그리 급히 가자는 건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리운 벗들 만나 국화주 아니라 찬 이슬이라도 기울일 수 있다면 아직 복이 남아 있는 셈이다. 두보처럼 병들어 높은 곳에 올라 원숭이 슬픈 울음소리만 듣는 처지에 비하면 말해 무엇할까.

한로는 여름새와 가을새가 각기 제 자리를 찾아 날아가는 날이기도 하다. 제비는 강남으로 떠나고 기러기가 온다. 오래전 한 가객은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라고 시를 노래했거니와 바야흐로 아침저녁 선선한 대기에 움츠러드는 이즈음은 ‘너무 아픈 사랑’을 하기엔 힘든 절기이다. 시인이 작별했다는 가을새는 떠나가는 새였을 테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여름새가 맞다. “한 고개 넘어 또 너머로 보인다/ 한 조각 흰구름에 걸린 둥근 달/ 그 파리한 달빛에 안긴 밤의 적막이/ 드높이 자란 갈대밭에 드리우는데/ 기러기 한 떼 줄지어난다/ 처량히 울며 줄지어난다/ 찬 서리 내려 하얘진/ 저 산 너머로/ 기러기떼 줄지어난다”는, 지난 시절 애창했던 ‘기러기’도 추억 속에서 날아오른다. 국화주 마실 중양절, 아직 하루 남았다. 그리운 이 떠오르면 서둘러 청해볼 일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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