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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앤소울 토너먼트에 참여한 프로게이머 윤정호와 권혁우의 대결 모습. OGN 캡처 |
프로게이머들의 플레이도 이와 같다. 상대의 공격에 대한 적합한 방어 기술을 머리로 판단한 뒤 조작 버튼을 누르는 시간은 0.1초도 걸리지 않는 것 같다. 프로게이머들의 대결은 인간의 반사신경과 판단능력이 얼마나 빠르고 정확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엄마가 되면서 ‘아이가 컴퓨터 게임에 빠져들 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 우리 아들도 게임에 미친듯이 열중하며 부모를 염려케할 시기를 겪을 것이다. “도대체 컴퓨터 게임을 왜 하니? 뭐가 재미있니? 인생을 그렇게 허비할래?”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내게도 양심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게임에 대해선 나는 뭐라 할 자격이 없는 엄마다.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게임을 하게 된 건 인문학의 영향이 컸다. 내가 대학 생활을 했던 2000년대 초중반, 인문학의 주요 화두 중 하나는 가상 세계였다. 영화 ‘매트릭스’가 기폭제 역할을 했다. 실제로 만지거나 냄새 맡을 수 없는 가상 세계는 말 그대로 허구일까, 그 세계에서 느낀 감정은 진짜일까 착각일까. 2004년 리니지2에서 일어난 ‘바츠 해방 혁명’은 이런 물음을 증폭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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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리니지2에서 벌어진 바츠해방전쟁에 참여한 내복단들. 인터넷 블로그 캡처 |
게임을 그만두거나 다른 서버로 옮기면 그만일 텐데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 내 집권 세력과 맞서 싸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정의감은 그만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 감정은 에너지 낭비일까 소중한 경험인 걸까.
이런 스토리에 매력을 느끼며 나는 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다중사용자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를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게임을 해보니 레벨을 높이고 아이템을 바꿀 때 느끼는 성취감이 게임을 지속하게 하는 동력이 됐다. ‘조금만 더 하면 만렙(최고 레벨)을 찍을 수 있는데, 좀 더 하면 아이템을 바꿀 수 있는데’라는 생각은 중독의 세계로 이끌었다. ‘혁명은 무슨….’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 피우는 담배처럼 게임이 머릿속에 달라붙었다.
이 고리가 끊긴 건 직장인이 되면서였다. 직장 생활을 내팽개치고 게임에 열중할 만큼 세상살이를 모르는 나이가 아니었다. 출산 이후로는 단 한번도 접속한 적이 없었다. 5살 미만 영유아를 돌보는 엄마에게 PC게임을 할 시간은 절대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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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온 게임의 한 장면. 인터넷 블로그 캡처 |
이런 생각에 부모의 입장이 더해지면 게임에 대한 생각이 복잡해진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내용으로 입장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감정의 충만함을 느끼는 것처럼 게임도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문화 콘텐츠인 것은 맞다. 문제는 다른 여가 활동에 비해 몰입도가 어마어마하게 높다는 점이다. 1∼2시간은 눈 깜박할 사이고 이틀 밤도 굳건히 지새우게 할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게임에 대한 ‘중독 담론’은 생산과 관계 없는 것을 죄악시했던 산업화 시대의 구태”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에 대한 부모의 염려는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아이가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게임에 빠져 지낸다면 이러한 모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인생의 큰 방향은 10, 20대에 결정된다. 삶의 다양한 기회는 청춘의 전유물이다. 40, 50대에 새롭게 도전하는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장년은 그간 이뤄놓은 걸 토대로 나아가는 시기다. 20, 30대에 사회의 한정된 자원을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 이탈하거나 뒤처진 사람이 나이들어 자신의 상황을 바꾸기란 어려운 법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게임만 재미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자’다. 게임은 재미있는 활동이지만 그 외에도 흥미롭거나 중요하게 느껴지는 일들은 많다. 그 가치를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어렸을 때부터 아이에게 다양한 관심을 불어넣어주고 싶다. 내가 게임에 집중하면서도 이로 인해 다른 걸 팽개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남편(당시 남자친구)이 나를 한심하게 볼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구직 활동의 중요성을 깊이 새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0대가 아닌 20대였기에 좀 더 자제심을 가질 수 있었던 측면도 있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는 어떤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될까. 부모가 아무리 아등바등 노력해도 아이들은 제 몫을 가지고 스스로 겅장한다. 하지만 부모가 문화적 취향을 공유하며 인사이트를 불어넣어줄 수는 있다. “게임의 재미는 레벨 업만이 아니야. 그 배경에는 북유럽 신화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 원형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단다.” 이를 위해선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소통해야 한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유혹에 흔들리더라도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법이다.
“엄마도 어글 안 먹고(사냥 대상을 도발하는 행위를 뜻하는 ‘어그로’ 안 하고) 몹(게임 속 캐릭터) 사냥 잘해∼.” 언젠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아이의 성향에, 훈육 책임이 있는 부모의 역할에 달렸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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