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소용없어… 사랑이 중하지”
삶을 누리고 사랑을 누리는 것
이보다 더 소중한 게 무얼까 엄마는 6·25 때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다 한다. 인민군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을 때 강을 건너야 살 수가 있었다. 낙동강은 피난민에게 생사의 강이었다. 뱃사공은 배를 타기 위해선 배삯을 내라 했다. 외할머니가 돈이 없어 쩔쩔 매고 있을 때 어렸던 엄마가 저금통을 깼다. 그 돈으로 식구들이 무사히 낙동강을 건널 수 있었다 한다. 죽음과 삶을 갈라놓는 낙동강 앞에서 엄마가 깨달은 것은 결국 ‘돈’의 귀함이었다. 한국산업화의 역군답게 엄마는 늘 자식들에게 말씀하신다. “돈은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다. 이 세상에 돈만큼 중한 게 있는 줄 아나.”
어릴 때 그런 말을 밥 먹듯 하는 엄마를 속으로 경멸했다. 돈을 위해 억척같이 사는 모습이 속물적이고 세속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야만스러운 자본에 대한 경멸도 한몫했다. 그것은 문학소녀적 허영 탓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나의 문학적 열정이나 비현실적인 만큼의 열망도 어쩌면 엄마의 억척스러운 노동의 대가 위에 만들어진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의 물적 조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기에 자유로운 책읽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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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
얼마 전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하는 ‘문학나눔’ 도서 선정에 심사를 하러 갔었다. 은퇴자들이 낸 수필집 종수가 일년에 수백종이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일터의 현장에서 물러나 까맣게 잊고 있던 시간을 회억하고자 하는 글이었다. 손주를 돌보는 할아버지의 육아일기에서부터 지나온 교단에서의 세월을 정리한 교사의 회고담, 평생 공무원을 하다 은퇴한 사람의 수기, 1970년대 여공생활을 했던 한 여성의 역사기록 등 잔잔한 삶의 결들, 삶의 순간에 대한 꼼꼼한 기록이었다. 누군가 삶의 회고를 들여다보는 일은 사람을 철학적이고 사색적으로 만든다. 인생은 제각각 다 위대하고, 찬란한 것이다. 가을이 수필의 계절이고, 글쓰기의 계절이라는 걸 느낀다. 회고집을 보며 가을이 문득 결실의 계절이란 걸 느낀다.
스산한 바람이 불더니 낙엽이 떨어진다. 단풍이 지고 있다. 은행나무는 은행알을 툭 떨어뜨린다. 자줏빛 고구마줄기는 고구마를 남기고 고추줄기는 빨간 고추를, 호박은 누런 호박통을 맺어놓는다. 시장에는 사과와 배, 알곡과 햇콩이 가득하다. 인간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인생의 막바지에 수필집을 남기고 회고집을 남긴다. 글을 써서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토닥거려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사랑을 누리는 것’이 아닐까. 마음 가득 사랑을 갖고 있지만 누리지 못한다면, 표현하지 못한다면 결여된 것과 다를 바 없다.
타인의 평가에 매달리느라 일에 쫓겼고, 일에 쫓기다 친구와 만날 시간이 없었다. 전화를 받고 메일을 체크하고 내야 할 서류를 챙기느라 정작 나를 만나러 온 학생과 눈 맞춰 얘기할 시간도 충분치 못했다. ‘마음의 재테크’를 잘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누구는 공황장애라 하고, 누구는 분노조절장애라고 한다. 나는 문득 고개를 들어 가을 하늘을 쳐다본다.
이 가을, 인간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아니 굳이 남길 것을 생각할 필요도 없다. 지금 삶을 ‘누리는 것’, 사랑을 ‘누리는 것’,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누리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한 일인지 모르겠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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