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회의 모두 발언 절반 할애 / “기업들 자발적으로 자금 모금”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 제시 / 최씨 재단설립 개입 여부 언급 안해 / 야 공세에 ‘인신공격성 논란’ 규정 / 사실상 ‘최순실 감싸기’ 지적 일어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과정과 모금 경위에 대해 설명한 것은 자신의 최측근인 최순실씨가 두 재단 의혹의 중심에 있다는 파장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두 재단의 자금을 모금했다고 밝혀 검찰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최씨의 두 재단 설립 개입 또는 재단 사유화 의혹 등에 대해선 ‘인신공격성 논란’, ‘확인되지 않은 의혹’ 등으로 규정해 최씨의 행위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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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오전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개막한 2016 대한민국 행복교육박람회를 방문, 미래교실관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일산=서상배 선임기자 |
박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 회의 모두발언 17분 중 거의 9분여를 할애해 관련 의혹에 대해 설명했다. ‘문화융성과 한류 확산을 위해 기업들이 주도적으로 설립한 단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기업들이 뜻을 모아 만들게 된 것”, “전경련이 나서고 기업들이 동의해 준 것”, “재계 주도로 설립된 것” 등의 언급을 통해 최씨가 개입한 것이 아니라고 변호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재단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선 정부와 재계가 소통을 통한 논의 과정을 거쳤다고 강변했다. “지난해 2월 문화체육활성화를 위해 기업인들을 모신 자리에서 문화 체육에 대한 투자 확대를 부탁드린 바 있고, 지난해 7월 초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원 기업 대표를 초청한 행사에서도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융복합 필요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는 것이다. 문화의 산업화를 통한 미래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것이지 최씨의 사리사욕을 채워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의미있는 사업에 대해 의혹이 확산되고 도를 지나치게 인신공격성 논란이 계속 이어진다면 문화 융성을 위한 기업들의 순수한 참여 의지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최씨에 대한 야당의 공세가 거세지자 문화융성을 핑계로 자제를 촉구한 셈이다. 이미 드러난 최씨의 비리 의혹에 대한 진위 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최씨만 감싸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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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씨가 설립한 ‘더블루케이’ 사무실 문이 20일 오후 굳게 잠겨 있다. K스포츠재단과 관련이 있는 더블루케이는 최씨가 우리나라와 독일에 세운 회사다. 하상윤 기자 |
박 대통령은 의혹의 핵심인 청와대와 최씨의 두 재단 설립 개입 여부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지 않았다. 불리한 이슈에 대해선 침묵하는 특유의 대응법을 재연한 셈이다. 야당은 두 재단 설립 과정과 자금 모금 과정에서 청와대 인사가 관여했고, 기업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라기보다는 청와대의 압력으로 돈을 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또 최씨도 두 재단 설립과 운영 과정 전반에 걸쳐 개입하고, 재단을 사유화하며 공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이날 직접 해명은 청와대의 무대응 전략이 의혹 확산을 키우고 있다고 여권의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급기야 K스포츠재단 직원 채용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진술, 박 대통령 연설문을 최씨가 수정한다는 소문 등 청와대와 직접 개입된 의혹들이 쏟아지자 적극 해명을 통한 돌파구를 모색하고 나선 것이다. 지지율이 추락하고 야당 공세가 갈수록 격렬해지는 상황에서 이번 의혹에 대한 언급 없이는 국면 전환이 어렵다는 판단도 고려된 듯하다. 무엇보다 최씨의 페이퍼컴퍼니의 존재가 알려지고 자금 유용 시도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레임덕이 가속화될 것이란 위기감도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여권에선 박 대통령이 최씨의 의혹을 비호하는 듯한 모습에 내년 대선 패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우승 기자 ws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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