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기사를 마무리하고 박물관을 나서며 기증식을 취재하며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을 되새겨봤다. 윤 회장은 지난 4월쯤 지인을 통해 한국에 수월관음도를 넘기고 싶어하는 일본인 소장자와 접촉했고, 전문가들의 검증을 거쳐 25억원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구열 문화부 기자 |
수십억원에 달하는 고가 유물의 일반적인 유통방식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는지라 이런 상상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자신은 없다. 다만 국립박물관, 문화재청의 열악한 유물 구입 예산에 대해 들은 바가 있어 떠올린 생각이다.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한다’가 나름의 결론이다.
국립박물관의 한 해 유물구입비 예산은 39억원이다. 서울의 중앙박물관과 지방의 13개 국립박물관이 이 돈으로 연구나 전시에 필요한 유물을 구입한다. 25억원의 수월관음도를 샀다면 예산의 절반 이상을 유물 한 점 구입하는 데 쓰게 된다. 고려불화가 아무리 귀하다 한들 유물 한 점에 예산을 쏟아부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문화재청은 쓸 수 있는 돈이 27억원가량 된다. 20억원은 긴급매입비이고, 7억원은 산하의 국립고궁박물관에 배정된 것이다. 그런데 긴급매입비는 유물 구입뿐 아니라 천재지변 등으로 갑작스럽게 유물 훼손이 발생했을 때 보존, 복원 등의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수월관음도에 ‘올인’하고 나면 너무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
유물 구입은 국민들의 문화재 향유를 풍요롭게 한다. 박물관 관계자는 “국가에서 좋은 문화재를 구입해 국민유산으로 하고 향유하게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외에 흩어진 우리 유물을 환수하는 데 주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한 전문가는 “지금의 예산으로는 환수해야 할 유물이 경매에 나와도 대응하는 데 한계가 많다. 억원 단위로 경매가가 넘어가면 따라가기가 벅차다”고 지적했다.
한국 유물이 국제 경매 시장에서 수십억원에 거래가 되었다는 사실이 뉴스가 되곤 한다. 최상급의 고려불화, 청화백자 등 일부 유물은 50억원 대에 거래되기도 한다.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졌다는 증거이니 반가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국가기관은 그런 유물 단 한 점을 확보하기가 언감생심인 게 현실이다. 초라하지 않은가.
강구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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