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연국칼럼] 박근혜 대통령 특별담화문

“모두가 저의 과오이고 허물
최순실·우병우 의혹 특검 도입”
‘내가 죽어야 나라 산다’ 각오로
국민 위해 모든 것 내던져야

박근혜 대통령이 특별담화를 발표한다는 긴급 뉴스 자막이 떴다. 또 무슨 일일까. 마음을 졸인 채 TV를 켰다. 드디어 춘추관으로 들어온 박 대통령이 국내외 취재진 앞에 섰다. 대통령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국민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순국선열이 지켜온 이 나라에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오로지 국민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나라가 잘되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저의 꿈이고 그 외엔 다 번뇌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고 외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처럼 되고 싶었지만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저는 어리석었습니다. 국민이 주신 권력을 제 것인 양 오만했습니다. 국민 행복은 열정만으론 불가능하고, 국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가슴’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제 눈과 귀는 멀었고, 마음은 닫혀 있었습니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 진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 간에 신뢰가 중요하다면서도 거짓말로 국민을 속였습니다. 자기 발밑을 제대로 살피지 못해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호가호위하는 것을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최순실! 이름 석 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알다시피 저는 동생 가족들을 청와대에 발조차 들여놓지 못하게 했습니다. 친인척 비리를 뿌리 뽑기 위한 조치였지만 저는 늘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허물없이 지내던 최순실씨를 자주 불러 말벗으로 삼았습니다. 그것이 초대형 의혹으로 번질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의 불찰입니다. 제가 뒤늦게나마 잘못을 깨닫고 죄인의 심정으로 국민 앞에 서기까지에는 어떤 분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옛날 최고 권력자에게 충성을 바친 부하가 있었습니다. 최고 권력자가 천하를 통일한 뒤 그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하자 권력자의 귀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권력자는 대수롭지 않게 그의 청을 승낙했습니다. 그날 이후 그 부하는 권력자의 귀에 코를 들이대기 시작했습니다. 최고 권력자와 밀담을 나누는 것으로 착각한 다른 신하들이 그에게 뇌물을 갖다 바쳤고, 그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특정인에 대한 대통령의 편애도 엄청난 권력이 될 수 있다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바로 제 이야기였으니까요. 그동안 언론에서 제기된 온갖 추문과 의혹은 모두 저의 과오이고 허물입니다. 최순실씨와 우병우 민정수석에 관한 의혹은 앞으로 특별검사를 임명해 낱낱이 밝히겠습니다.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사람들을 포함해 청와대 비서진을 전면 개편하고, 제 자신도 이 시각 이후 새누리당을 탈당해 거국내각을 구성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내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각오로 저의 모든 것을 내던지겠습니다. 정말 국민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살피겠습니다. 다시는 저로 인해 국민이 가슴 아파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제 자신부터 다잡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담화를 끝낸 대통령은 춘추관 바닥에 엎드려 국민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석고대죄하듯 오랫동안 무릎을 꿇었다. 두 뺨엔 굵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청와대 직원과 기자들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다. 전국에서 TV를 시청하던 국민들은 “국민이 승리했다”고 환호했다.

환절기 탓인지 밤새 침대 위를 구르다 새벽녘에 눈을 떴다. 너무도 생생했다. 그러나 꿈이었다. TV를 틀었다. 뉴스 앵커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아침 공기를 가른다. “최순실씨가 뒤에서 수렴청정한 증거가 또 발견됐습니다. 대통령의 ‘95초짜리 사과’가 결국 거짓으로 드러났군요.” 머리가 무겁다. 정녕 꿈이었을까. 그런 꿈이라면 백 번이라도 꾸고 싶다. 대통령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배연국 수석논설위원